이번 호에서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김재은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업 내 청렴확산활동에 대한 고견을 들어보고자 한다.
윤리 메시지가 조직에 ‘존재’하는 것과 실제 의사결정에서 ‘작동’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흔히 윤리적 문화강도(culture strength)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윤리적 문화강도란 구성원이 핵심 윤리가치를 얼마나 폭넓게 공유하고, 특히 성과압박이나 위기 상황에서도 이를 일관되게 고수하느냐를 의미합니다. 다수의 글로벌 진단 프레임워크에서는 신뢰와 공정성, 공감의 정서, 리더의 명확한 윤리적 기대와 솔선수범, 윤리적 지향성의 일상화, 그리고 보복 우려 없는 스피크업(Speak-up) 환경을 문화강도의 핵심 지표로 제시합니다. 이러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윤리 메시지는 선언에 그치기 쉽습니다.
이 간극을 보여주는 대표적 신호는 중요 의사결정 단계에서의 소위 ‘윤리적 침묵’입니다. 내부 구성원이 이해상충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이를 문제로 제기하지 않거나, 형식적 신고에 그치는 상황은 문화강도가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징후입니다. 가령, 공공부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각종 개발·조달·인허가 관련 이해상충 사례들은 관련 규정과 신고제도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서 회피·배제·재배정과 같은 조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이는 윤리규범이 ‘절차상 존재’하더라도, 성과·관행·관계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는 쉽게 침묵으로 잠식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정리하면, 윤리 메시지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규정의 유무가 아니라 조직의 윤리적 문화강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문화강도는 중요한 의사결정 순간에 윤리적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이해상충이나 리스크 앞에서 조직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통해 가장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러한 문화강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의사결정 과정과 사건 이후의 조직적 대응을 지속적으로 점검·진단하려는 노력 자체가 윤리문화 강도를 높이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고 이는 윤리 리스크를 사전에 식별·예방하는 핵심적인 관리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청렴문화가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조직의 DNA로 각인된 조직들의 공통점은 윤리를 ‘준수해야 할 규정’이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생가능한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하기 위한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조직들의 성공 요인은 다음의 세가지 핵심 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결정적 순간’에서의 리더의 행동입니다. 지속적인 행동변화를 이끈 조직들은 평상시의 선언보다 위기나 압박 상황에서의 실제 조치를 통해 윤리 메시지를 증명합니다. PwC의 글로벌 컴플라이언스 연구에 따르면, 성숙한 조직들은 컴플라이언스를 비즈니스 속도를 늦추는 제약이 아니라, 사후비용과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선제적 관리 장치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건발생시 개인징계에 그치지 않고, 이를 유발한 의사결정 구조와 보상 체계를 점검·조정하는 조직일수록 구성원의 신뢰와 행동변화가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둘째, 제도와 기술을 결합한 ‘연결된 컴플라이언스(Connected Compliance)’입니다. 성공조직들은 캠페인 중심 접근을 넘어, 현장에서 실제 활용가능한 리스크 관리도구를 제공합니다. NAVEX의 2026년 트렌드 보고서가 지적하듯, 데이터와 분석을 기반으로 잠재적 리스크를 조기에 식별하고 이를 이사회와 현장 실무자가 동시에 공유·활용하는 구조는 컴플라이언스를 특정 부서에 국한된 업무가 아닌 전사적 의사결정 프로세스로 정착시키는 핵심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셋째, 심리적 안전감이 전제된 스피크업(Speak-up) 문화입니다. 행동변화의 출발점은 ‘문제를 제기해도 불이익이 없다는 확신’입니다. 최근 글로벌 조직 사례를 보면, 내부제보를 개인의 용기에 맡기기보다 제보 채널의 독립성, 보복방지, 사후조치의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경우에만 실제 행동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문제를 제기한 개인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가 반복되도록 만든 의사결정 구조를 점검대상으로 삼는 조직에서 스피크업은 일회성 사건대응을 넘어 지속가능한 조직학습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청렴문화가 조직에 정착된 경우의 공통점은 윤리를 별도의 캠페인이나 교육과제가 아니라, 리더의 실제 의사결정,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 그리고 보호된 스피크업 구조를 통해 일상적 판단기준으로 작동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조건이 갖춰질 때, 청렴은 선언이 아니라 조직의 의사결정 방식 자체로 자리 잡게 됩니다.
청렴·윤리 확산활동이 형식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윤리가 실제 의사결정 과정과 분리되어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실무자가 우선 점검해야 할 핵심은 윤리기준이 선언이나 절차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적인 판단과 선택에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가입니다.
첫째, 부패위험 식별·평가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형식적인 체크리스트를 넘어, 우리 조직에서 실제로 발생했거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위험을 식별하고, 그 결과가 사업추진, 계약체결, 인사·보상 결정 등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가 중요합니다. 점검의 기준은 ‘규정이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이 평가가 실제 선택을 바꾸었는가’입니다.
둘째, 리스크 정보와 컴플라이언스 데이터의 활용 방식을 점검해야 합니다. 교육 이수율과 같은 투입 지표보다, 내부신고의 유형 변화, 위험평가 결과의 경영진 보고 여부, 위반 발생 이후 제도개선까지 소요된 기간 등 과정·결과지표가 관리되고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데이터는 윤리이슈를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관리가능한 리스크로 인식하게 만드는 도구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셋째, 윤리실패사건 이후의 조직적 대응이 학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윤리사건이 개인징계로만 종결될 경우, 판단기준은 조직에 축적되지 않습니다. 사건을 유발한 의사결정 구조와 관리방식이 무엇이었는지를 점검하고, 그 결과가 제도개선과 내부공유로 이어졌는지가 중요합니다. 구성원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 이후 조직이 무엇을 바꾸었는지를 통해 판단기준을 학습합니다.
마지막으로, 실무자는 컴플라이언스 기능을 감시 중심 역할이 아니라 의사결정 지원 기능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업이 리스크를 인지하면서도 업무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를 설계할 때, 윤리는 캠페인이 아니라 일상적인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요약하면, 청렴·윤리활동의 지속성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윤리기준이 실제 의사결정 접점과 사건 이후의 대응과정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 그것이 형식화를 막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