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기업윤리

선의로 포장된 마케팅의 위험

드라마 ‘애플 사이다 비니거’

넷플릭스 시리즈 《애플 사이다 비니거》는 호주의 인플루언서 벨 깁슨(Belle Gibson)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다. 깁슨은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았지만 자연식과 명상으로 병을 극복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퍼뜨렸고, 이를 기반으로 앱과 요리책을 출시하며 글로벌 웰니스 브랜드의 얼굴로 떠올랐다. “앱 수익 일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약속으로 선한 영향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서사는 조작이었다. 벨 깁슨은 병을 진단받은 적도 없었고, 약속한 기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지어낸 이야기는 앱스토어, 출판사, 플랫폼, 유통사, 파트너 브랜드를 통해 ‘힐링 상품’으로 소비되었고, 그 결과 사회적 피해가 발생했다. 깁슨의 검증되지 않은 대체요법을 믿은 중병 환자와 가족들이 기존 치료를 포기하거나 지연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끝나지 않는다. 깁슨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검증 없이 확산시킨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책임도 크다. 감동적인 메시지에 기대어 사실 확인을 생략한 점은 기업과 플랫폼 모두에게 경고를 남긴다.

이는 오늘날 가치 마케팅과도 관련이 있다. ESG, 기부, 힐링, 지속가능성과 같은 가치를 앞세운 마케팅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실질적인 활동이 투명하게 검증되지 않는다면, 그 메시지는 오히려 기업의 신뢰를 해치는 리스크가 될 수 있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인플루언서 중심의 마이크로 브랜드는 창업자의 개인 신뢰와 스토리텔링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는 빠른 확산을 가능하게 하지만, 문제 발생 시 기업과 사회에 피해가 빠르게 번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광고 메시지에 대해 사전 실증 책임(substantiation requirement)을 부과하고 있으며, 특히 건강, 환경, 기부, 국적 등 소비자의 신뢰를 유도할 수 있는 표현에는 객관적 근거를 요구한다. 이는 ESG공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ESG 공시 기준인 유럽연합의 CSRD(지속가능성보고지침)에서는 기업이 공시하는 지속가능성 정보는 “정확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교 가능해야 한다(Verifiable and Comparable)”는 원칙을 강조하며, ESG 관련 활동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실행과 통제 시스템에 기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기업의 진정성은 ‘좋은 마음’이나 ‘감동적인 이야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업은 내부적으로 가치를 어떻게 관리하고, 외부에는 어떻게 증명 가능한 형태로 전달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윤리경영은 홍보와 리스크 회피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신뢰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는 전략적 기반이다.

(이미지 출처: 왓챠피디아)


참고

  • 서울경제, "[토요워치] '영앤리치' 꿈꾸며···말기 癌환자 행세까지?"(2019.05.24)
    https://n.news.naver.com/
  • 한경ESG"그린워싱 제재 본격화…'규제보다 예방이 중요'"(2025.05.03)
    https://www.hankyung.com/
  • 임팩트온, "코카콜라, “100% 재활용” 문구 결국 손본다… EU ‘그린워싱’ 지적에 백기"(2025.05.08)
    https://www.impact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