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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8년
05월호

사례돋보기

다양함, 평등함 그리고 포용

최근 은행권에서 불거진 성 차별 채용은 국내 양성평등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2013년 H은행은 전형과정마다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었고, 2015~2016년 K은행은 남성 지원자 백여 명의 점수를 특별한 이유 없이 올려주었다.

반면,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기업 내 다양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심지어 구글은 백인 남성을 채용에서 일부러 배제시키고 있다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실리콘밸리는 왜 이렇게까지 다양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기업들이 갖게 되는 리스크는 무엇일까? 이번 사례돋보기에서는 기업의 다양성 관리의 중요성과 사례들을 짚어보았다.

◎ 다양성의 중요성

한국의 기업문화는 공동체의 단합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조직이 우선되는 기업에서는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진 개인들에게 정해진 답을 강요하게 된다. ‘출퇴근은 무조건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한다’, ‘회식에 불참하는 사람은 조직에 애정이 없다’, ‘기혼여성은 중요한 프로젝트에는 참여시키지 않는 게 효율적이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주어진 답에 순응하기 어려운 구성원들은 성과나 승진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다. 점차 조직력은 떨어지고 협업은 어려워진다. 최선을 다해봤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조직의 문제점은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조직은 점차 더 큰 폭력을 부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커다란 리스크로 돌아오게 된다.

성폭력, 명품 브랜드를 최악의 일터로 만들다

M기업은 국내 최고의 명품 가구업체다. 부엌, 인테리어 가구 부문에 주력하고 있는 만큼 주 고객은 여성들이다. M기업이 여성 친화 기업을 표방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년에 있었던 M기업 사내 성폭력 은폐 사건으로 고객의 배신감은 엄청났다. 피해자는 입사 동기가 설치한 화장실 몰래카메라에 피해를 입은 것에 이어 신입 교육 담당자로부터 성폭행까지 당했고 뒤이어 인사팀장에게도 성폭력을 당할 뻔했다고 고발했다. 사람들의 공분을 산 건 이후 M기업의 대처였다. 가해자를 징계해야 할 사측이 오히려 사건을 은폐한 것이다. 억울했던 피해자는 온라인에 자신이 당한 일을 폭로했고 M기업은 저녁 뉴스 헤드라인에 올랐다. 곧 불매 운동이 시작됐다. 당시 3분기 실적 호조에도 불구하고 주식은 4.11% 하락했으며 예정됐던 홈쇼핑 방송도 무기한 연기됐다. 결국 지난해 M기업의 매출액은 2조 625억 원으로 창사 이래 첫 2조 원을 돌파했지만 영업이익은 1405억 원으로 이전 년도 대비 12%가 감소했다. 최근 한국기업지배구조원(CGS)이 발표한 사회책임경영 부문 M기업의 등급은 B에서 C로 하향 조정됐다. M기업의 근로자 인권 보호 정책이 취약하다는 것이 외부기관의 객관적인 진단으로 드러난 것이다. 성별 다양성 관리 실패가 대외 기업평가 지수 하락과 영업이익 감소라는 실체적인 리스크로 확대된 것이다.

외모, 인종차별, 22년 장기 집권한 CEO를 퇴진시키다

“뚱뚱한 고객이 들어오면 물을 흐린다.” 미국의 의류 브랜드 애버크롬비의 전 CEO였던 마이크 제프리스의 발언이다. 애버크롬비의 차별적 행태는 매장에서도 이어졌다. 여성용 옷은 엑스라지 이상의 사이즈를 아예 들여놓지 않았으며 종업원들도 키 크고 늘씬한 백인 남녀만 고용했다. 시카고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는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불매 운동이 일어난 것은 물론이다.

애버크롬비는 인종차별적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미개인이 사는 지역에는 입점하지 않겠다며 2000년대 초까지는 아시아 시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울며 겨자 먹기로 일본, 홍콩, 한국 시장에 들어왔을 뿐이다.

애버크롬비의 오만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이크 제프리스의 차별 발언에서 불거진 불매 운동과 트렌드 파악 실패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매출은 연이어 하락했다. 모 해지펀드는 실적이 부진한 이유는 리더십의 실패 때문이라며 CEO 교체 압력을 넣기도 했다. 2014년, 22년 넘게 장기 집권한 마이크 제프리스는 끝내 사퇴했다. 11분기 연속으로 판매가 하락하고 직전 해인 2013년에는 이익이 77% 가량 급감했으니 필연적인 결과였다. 외모와 인종에 대한 차별이 애버크롬비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고 CEO의 퇴진까지 불러온 것이다.

◎ 포용적인 조직 문화

올해 2월, 한 대학병원의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선배로부터의 폭언과 장시간 중노동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만큼 특유의 깐깐한 지도 관행이 필요하다는 시선도 일부 존재하지만, 동일한 수준의 직장 내 괴롭힘은 어떠한 직군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부러 과도한 업무를 주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교묘히 따돌려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식이다. 이러한 폭력 행위는 ‘성과주의’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아닌 자신을 탓하기 쉽다. 먹고 사는 문제가 달린 일터에서 당하는 폭력이기에 더욱 잔인하다. 괴롭힘이 만연한 조직에서 업무 생산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구성원간의 신뢰가 약하니 협업에서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도 낮고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생길리 만무하다.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비극인 직장 내 괴롭힘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한 이유다.

선진국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대책 사례

선진국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대책 사례

스웨덴은 1993년 세계 최초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프랑스도 노동법상에서 사용자의 예방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2012년 직장 내 폭력 및 괴롭힘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배포했고, 이를 통해 조직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행위 및 성폭력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미국 투자업계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대책 수립 여부를 투자 시 체크해야 할 리스크로 보고 있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빈약한 윤리규정이 기업 가치를 추락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 투자주간지 배런스는 성 차별 이슈에 대한 대응이 우수한 기업일수록 투자 성과가 좋다고 전했다. 다양성 지향 정책을 수립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기업의 주가는 수익률이 높고 변동성이 낮았다는 것이다.

올해 4월, 미국 법원은 포드사가 해고한 직원에게 178억 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직장 상사에게 심각한 차별을 받은 직원이 이를 사측에 신고했지만 포드사는 오히려 피해자인 직원을 해고해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이 단순한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니며 이를 관리할 주체가 기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국내에서도 관련 법 제정 움직임

우리나라 직장 내 괴롭힘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2017’에 따르면 응답자의 73.3%가 지난 1년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고 이직자 중 절반에 이르는 48.1%가 이직의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을 꼽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8월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남성(68.2%)이 여성(64.3%)보다 직접적 피해를 더 많이 경험했으며 소득이 낮을수록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5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간접경험(목격 혹은 상담)했다는 응답은 80.8%에 달했다. 사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미비했다. 응답자의 40.1%는 상담 창구가 설치돼있지 않다고 답했고 14.5%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이정미 의원(정의당)은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피해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 법안을 발표했다. 단번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관련법의 제정은 환영할 일이다. 그동안 묵인해왔던 관행을 바꾸려는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 우리 모두가 직장인

직장인들은 누구나 개인이다. 개인의 특성은 성별부터 나이,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다양성을 무시하는 조직문화는 무시, 폭행, 폭언을 조장하며 개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사건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대적인 캠페인과 관련법 제정 등의 강력한 조치가 시급한 이유이다.

조직은 서로 다른 개인들의 집합이다. 따라서 개인을 무너뜨리는 직장 내 괴롭힘은 기업의 성장에도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 직장 내 괴롭힘과 재무적 성과 간의 상관관계를 수치로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일터에서의 상호존중은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동료애와 성취감으로 상쇄하며 살아가야 하는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