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돋보기
위대한 기업들도 피하지 못한 오만의 함정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 - 나폴레옹

프랑스혁명이라는 격동의 시대에 등장해 탁월한 군사능력으로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고 프랑스를 승리로 이끈 나폴레옹은 그야말로 구국의 영웅이었다. 성공에 도취된 그는 혁명의 기치였던 공화정을 부정하고 스스로 황제에 올랐고, 이후 겨울에는 러시아와 전쟁을 하면 안 된다는 참모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벌을 강행, 병력의 대부분을 잃었다. 러시아에서의 패배는 나폴레옹 몰락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영웅 나폴레옹도 ‘오만의 함정’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이처럼 오만은 역사적으로 수없이 검증된 리스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만의 함정은 성공한 기업, 국가, 인물들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이번 호 사례돋보기에서는 오만 리스크로 야기된 경영 실패 사례를 살펴보고 경계하고자 한다.
샘플이미지 ▪ 리먼 브라더스 지속가능성이 국제적인 컨센서스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 계기가 있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다. 리먼 사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세계적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됐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이었다.
리먼 사태의 주범은 MBS(Mortgage Backed Security; 모기지저당증권)다. 주택을 담보로 모기지대출을 해준 은행이 수십 년에 걸쳐 원금과 이자를 받는 대신, 그 저당권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해당 채권을 산 투자은행은 그 채권에 여러 금융상품을 섞어서 새로운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했다. 최초의 주택구매자가 대출을 갚지 못하게 될 경우, 연관된 투자자들이 줄줄이 파산하게 되는 구조다. 당시 미국의 경상수지는 만성적으로 적자였고 성장률도 둔화되는 추세였다. 실물경제는 처참한데 금융 부문 거래만 확장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주택담보 파생상품 시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었다. 천재들이 즐비한 월스트리트의 파생상품 연구원들과 트레이더들이 이러한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만간 파산할 게 분명한 파생상품의 개발과 판매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들은 폭탄이 터지기 직전까지 돈을 벌고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리스크도 대처할 수 있다는 오만은, 전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받게 했다.
이 리먼 사태 이후 국제 사회는 맹목적인 재무적 수익 추구를 지양하고 환경, 인권 등 지속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샘플이미지 ▪ 도시바 도시바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일본 굴지의 전자회사다.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기도 했던 도시바의 몰락은, 2006년 경영진들의 밀실회의에서 시작됐다. 니시다 대표는 M&A시장에 나온 미국의 핵발전소 건설업체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을 어떻게든 손에 넣고자 했다. 입찰 금액은 54억 달러까지 부풀었고 많은 이사진들이 인수에 대해 경고했으나 니시다 대표는 뜻을 꺾지 않았다. 핵발전 사업으로 제네럴 일렉트로닉 같은 거대 미국 기업을 따라잡고 20년 안에 시장에 되팔아 수익을 남기겠다는 청사진만 앞세웠다. 그러나 2008년 웨스팅하우스의 원자로 2기 건설 계획은 공사가 지연되면서 비용이 초과됐고, 2011년 3월 일본 북동부에는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해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하는 블랙스완1)이 일어났다.
결국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 파산을 신고했고 도시바는 투자금액 1조 엔(약 11조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일본 기업사 최대 손실이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도시바가 도쿄주식거래소에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5천억 엔(약 5조 원)의 순자산을 소멸시켜야 했고, 그룹 영업이익의 90%를 차지하는 반도체 생산시설을 매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했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도시바의 몰락으로 인해 하향세를 걷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시장을 확대하고 매출을 늘려가고 있었던 기업이 바로 삼성전자다.
니시다 대표의 오만한 의사결정이 도시바의 몰락과 일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무너뜨리는 트리거가 된 것이다.
샘플이미지 ▪ 모토로라 아이폰 3GS가 출시되기 직전,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던 휴대폰이 있었다. 일명 베컴폰이라 불리던 모토로라의 레이저2다. 1996년에 출시한 모토로라의 스타택 시리즈는 국내에서도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지금도 스타택을 그리워하는 마니아들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모토로라는 벽돌을 연상시키는 볼품없는 모델만 난무했던 휴대폰 업계에서 압도적인 선도기업이었다. 디자인뿐 아니라 무선통신 분야에 수많은 기술을 갖고 있었고 성공을 거듭한 모토로라는, 1999년 디지털화를 외면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임원들은 “아날로그 통신 추종자가 44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틀릴 리 없다”면서 스마트폰 개발 등의 혁신을 거부하고 이미 성공한 아날로그 폴더폰만 고집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후 휴대폰 업계의 1인자 자리는 아이폰을 개발한 애플이 차지했다.
아무리 위대한 성공을 했을지라도 계속해서 변화하지 않는다면 미래를 담보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샘플이미지 ▪ 포드 자동차의 왕, 대량생산의 아버지, 현대(Modern)의 발명자. 포드사를 설립한 기업인, 헨리 포드의 별명들이다. 마차가 있는데 누가 느리고 비싼 자동차를 사겠느냐며 비웃음을 당하던 헨리 포드는 회사를 선전하기 위해 레이싱 경기에 참여했다가 죽을 뻔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포드 T형을 개발했고, 포드사를 미국 최대의 회사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값싸고 안전한 포드 T형은 여러 계층에서 사랑받았고, 미국의 소비자들은 기존의 검은색만이 아닌 다른 색깔의 자동차도 원하기 시작했다. 단일모델에서 벗어난 다품종 대량생산에 대한 요구였다. 이에 대한 포드의 대답은 “검은색이기만 하다면 어떠한 색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였다. 반면 시장의 후발주자였던 GM의 알프레드 슬론은 참모들의 의견을 수렴해 5개 다른 회사를 합병하고 5개의 모델과 25개의 제품을 생산하는 다품종 생산 체제를 마련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헨리 포드는 GM에 시장의 패권을 빼앗기고 후발업체들에게 선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자신감과 자부심 그리고 겸손
경영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 도전해야 하는 기업 운영에서 자신감은 꼭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자신감과 오만은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자신감은 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 노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태도다. 그러나 오만은 과거의 성공방식이 미래에도 성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아집이다. 권력을 나누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이해관계자의 사정을 살피는 사회공헌활동, 시장에서 유리되지 않도록 점검해주는 자기진단 시스템의 도입 등이 오만의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비책일 것이다.
결국 과거의 성공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겸손의 미덕이다. 어쩌면 경영이란 자신감과 겸손을 함께 추구하는 구도자의 길일지도 모른다.

1)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



자세한 참고자료 리스트는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내 한글파일(PDF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