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돋보기
ESG 가치와 지속가능성
투자원칙과 경영전략, 그리고 국가평가

책임투자(Responsible Investment)란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투자하는 방식이다. 책임투자의 목적은 재무적 리스크와 함께 비재무적 리스크까지 관리해 지속가능한 투자 성과를 창출하고 장기 수익을 높이는 것이다. 책임투자에 대한 관심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는 기업이 복수의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회복탄력성(resilience)이 높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1경 가까운 8조 달러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 CEO 래리 핑크는 팬데믹 시대에 더욱 분명해진 투자원칙인 ESG 가치를 기준으로 투자·인수 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ESG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면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이라도 미래가치는 하락하고 투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ESG는 기업의 혁신경영전략과 밀접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고, 마침내 국가평가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ESG 투자원칙과 금융시장의 재편
국부펀드(SWF)는 외환보유액 및 공공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함으로써 국가자산을 증대시키고 금융산업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 따라서, 국부펀드는 장기적인 투자 방향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초대형 기관 투자자(유니버셜 오너)로서 운용수익률 제고뿐 아니라, 금융시장 시스템을 포함한 경제 근간을 탄탄하게 만드는 목적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유니버셜 오너로서 공적 연기금의 활발한 ESG 투자가 기업의 ESG 경영환경개선의 마중물 역할을 하여 이들 기업이 성과를 내면 국내외 ESG 편드의 투자 증대가 이루어지고 금융시장이 활성화되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책임투자로 기금운용방식을 바꾸어 지속가능한 경제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로 약1700조 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이 있다.

GPIF는 연기금 운용을 통해 일본 주식시장의 7%와 세계 주식시장의 1%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GPIF는 ESG 투자원칙 아래 ‘ESG 지수’, ‘젠더 지수’(성평등 친화 기업투자), 저탄소 지수 등의 다양한 지수를 개발하여 수십조 엔의 자금을 ESG 실천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GPIF는 일본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여성 친화적인 근무 환경을 갖춘 기업들에 10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했다. GPIF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기업의 기여도를 기준으로 자산 운용 원칙을 실천하는 사례를 잘 보여준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유럽연합의 그린딜 전략에 발맞춰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을 천명하는 등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중심으로 ESG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다.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 자산운용사 블랙록 ESG 투자 헤드인 브라이언 디즈를 지명했다는 것은 글로벌 차원에서 ESG가 핵심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실제, 블랙록은 석탄 사용으로 얻은 매출이 25%를 넘는 기업의 주식과 채권을 처분했다.

국내에서도 롯데지주를 시작으로 포스코, 현대, LG, SK 등 대기업 계열사는 녹색채권 발행을 이어가고 있다. ESG 투자가 글로벌 이슈가 되면서 환경 관련 녹색채권 발행이 늘어나는 세계적 흐름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수자원공사·코레일·중부발전 등 공공기관들도 앞다투어 녹색채권과 지속가능채권 발행으로 ESG 투자를 이끌고 있다.
ESG 경영전략과 기업의 생존전략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사회공헌활동으로 기업이미지 제고를 높이는 데 활용되었다면, ESG 경영전략은 ESG 가치를 기업의 PR·마케팅 전략 차원이 아니라 투자 환경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포스코가 ESG 경영 차원에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키로 했다는 사실은 엄밀히 얘기하면 환경 캠페인이지 ESG 경영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2019년 기준 국내 온실가스 배출 총량의 약 11%를 차지하는 포스코가 삼척시에 2GW급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최고경영진의 ESG 인식 부족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ESG 전성시대에 기업의 잘못된 판단은 일시적인 수익 하락에 그치지 않고 존폐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ESG 가치는 더 이상 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선택 요건이 아니라 기업의 존폐를 결정지을 수 있는 생존전략이 됐다. 세계최대 정유사 엑슨모빌이 1928년 편입된 다우존스지수에서 92년 만에 퇴출당한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엑슨모빌은 기후위기라는 글로벌 이슈에 눈감고 탄소에너지 개발과 기술 투자에 집중했다. 투자자의 탄소감축 경영전략요구를 묵살한 엑슨 모빌은 기록적인 주가폭락과 다우존스지수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 행동주의 투자사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 이사회에서 신재생에너지 전문가 이사 4명의 선임을 요구해서 2명의 교체를 이끌어냈다. 이는 ESG를 매개로 한 금융과 실물의 뉴딜적 변화의 결과물인 것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전체 수익의 30% 이상을 석탄 사용에서 얻는 기업을 투자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이제 투자자들은 기업에게 립서비스가 아닌 숫자를 요구한다. 탄소효율을 높이고 있는지는 탄소집약도 숫자, 산업재해 및 작업장 안전은 산업재해율, 나아가 미국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의 재무적으로 중요한 ESG 기준과 기후변화 재무 정보 공개(TCFD) 기준 성과가 그러한 숫자다.
ESG 가치와 국가평가
1월 18일(현지시각)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처음으로 전 세계 144개국에 대한 ESG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은 평가에서 최고등급인 1등급을 받았다. 1등급은 ESG 수준이 높아 국가신용등급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ESG 지표가 단지 투자를 분석하거나 기업경영을 판단하는 지수를 넘어, 국가신용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ESG 가치는 기업 차원의 지속가능 경영전략구상에서 국가 차원의 정책 비전을 수립하는 데 이르기까지 사회경제적 전환의 핵심적인 실행 전략으로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등장한 ESG 가치는 기업경영전략뿐 아니라 국가의 사회경제혁신의 기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위대한 리셋(Great Reset)’ 과정에서 무늬만 ESG, 그린워싱(친환경경영분식)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아젠다로 ESG 가치를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는 ESG 1등급 국가로서 한국판 뉴딜을 통해 친환경 산업을 육성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등 국가정책이 기업을 견인할 때, ESG 가치가 경제적 선순환을 이루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