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리뷰
ESG 혁신과 자본주의 전환 리베카 헨더슨(2021), 『자본주의 대전환. 하버드 ESG 경영수업』 (어크로스)

하버드대 특별교수 리베카 헨더슨은 비즈니스 스쿨에서 강의한 ‘자본주의 다시 상상하기’를 바탕으로 쓴 『자본주의 대전환』(Reimagining Capitalism in a World on Fire)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극심한 불평등과 생태계 파괴를 초래한 자본주의를 지속가능 자본주의로 바꾸는 길을 모색한다. 저자는 1장에서 “주주 가치의 극대화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사회와 지구뿐 아니라, 기업의 건강에도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주주자본주의의 시효만료를 주장한다.

기업이 공익을 희생해가며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거나 자유시장이 통제받지 않는 상황은 파멸로 이끌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주주 가치 극대화를 위해 기업이 유해 쓰레기를 강에 버리고, 정치과정을 통제하고, 가격 담합을 밀어붙인다면, 자유시장은 부의 총액은 물론 개인의 자유도 확대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기업 그 자체가 의지하고 있는 제도를 파괴하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주주자본주의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자본주의 대전환의 다섯 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공유가치창출과 목적 지향 기업
샘플이미지 첫 번째는 ‘주주우선주의’에서 경제적 가치와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를 조화시키는 ‘공유가치창출’을 기업목표로 설정하는 것이다. 폐기물 사업을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혁신하여 예상치 못한 수익과 사회적 명성을 획득한 노르스크옌빈닝(Norsk Gjenvinning)사1)가 그 사례이다. 하지만 공유가치창출만으로는 자본주의 대전환을 기대할 수 없다.

두 번째로는 그 목적을 구성원 모두가 자각하고,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받는 ‘목적 지향 기업’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공유가치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목적 지향 기업은 세상에 대단히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컨대 노르스크옌빈닝사는 경쟁사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변화를 이끌었다. 또한, 에너지 효율성 제고가 높은 수익을 확보해준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환경 친화는 빠르게 산업 전반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공유가치창출을 목표로 하는 도전적인 과제를 채택하거나 경제체제를 바꾸려는 과감한 결정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불확실성에 맞서야 한다. 따라서 기업의 변화를 정당화하고 자본주의의 전환을 시작하는 것은 용기 있는 결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 노르웨이 최대 폐기물처리업체 “노르스크옌빈닝(Norsk Gjenvinnig)”사는 2012년 에리크 오스문센이 CEO에 취임한 이후 단순 쓰레기 처리업체에서 세계 최고의 산업재활용 원자재 판매업체로 변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현재 노르웨이 폐기물의 25%를 수거하여 그중 85%를 에너지화하거나 산업원자재로 가공하여 생산하고 있다.
ESG 투자원칙과 ESG 경영전략
샘플이미지 세 번째는 지속가능경영 관련 지표들을 넣어 재무 재설계를 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대전환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물은 수익 극대화에 기울어진 재무 시스템이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공유가치창출의 장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환경 및 사회문제 해결의 비용과 편익을 보여주는 측정기준이 필요하다. 신뢰할 수 있고 표준화된 지표를 개발하여, 계량화된 재무제표에 가려지거나 재무회계에서 은폐된 가치들을 가시화하고 평가해야만 한다. 저자는 환경(E)·사회(S)·지배구조(G) 지표가 이러한 도전에 대한 응답이며, 이미 투자자의 행동을 바꾸고 있다고 주장한다. 2018년 관리되고 있는 총금융자산의 20%에 육박하는 19조 달러 이상이 ESG 기반 정보를 통해 투자되었다.

현대의 재무제표가 성과와 연계된 표준 감사 기준을 토대로 기업을 비교가능하게 만들어 주지만, ESG 지표를 기준으로 한 기업현황 파악에는 한계가 있다. 단순 재무제표에만 의지한다면,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하청업자의 인권을 짓밟는지, 건강한 기업문화를 가졌는지 등의 정보를 놓칠 수 있다.

1999년 글로벌 환경단체연합인 ‘환경책임경제연합’(CERES)은 지속가능성보고서를 표준화하기 위한 조직인 글로벌 리포팅 구상(GRI)을 유엔환경계획(UNEP)과 함께 만들었다. 2019년 기준 세계 250대 기업의 80% 이상이 GRI 기준을 이용해 지속가능성 성과를 보고했고, GRI 데이터베이스에는 3만 2천 건 이상의 보고서가 저장돼 있다. 하지만, 자료의 주요 목적이 NGO와 정부가 기업에 책임을 묻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제한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투자자 중 ESG 지표 개선이 더 나은 수익을 창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투자자 친화적인 측정지표 개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1년 설립된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는 모든 회사의 유용한 ESG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지표개발에 한발 더 나아갔다. 투자자들은 SASB 지표를 통해 ESG와 재무결과 사이의 관계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기업들은 공유가치창출을 위해 고안된 전략적 가치를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됐다.

금융시장에서 ESG 지표는 투자원칙을 재정립하는 기준이 됨과 동시에 기업에게 ESG 가치는 재무구조를 재설계하는 경영전략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ESG 투자원칙과 ESG 경영전략은 재무 설계의 기준을 넘어 혁신의 원동력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율규제에서 시장과 국가의 균형으로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는 하나의 기업이 해결할 수 없다. 네 번째는 환경적·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는 무임승차자들이 시장을 지배할 수 없게 자율규제라는 기업의 협력역량을 증대해야 한다. 기업협력은 지속적인 협력에 모두가 공감하고 편익과 비용이 분명할 때만 가능할 수 있으며, 부정행위나 무임승차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것이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기업이 자율적으로 이해관계자 공통의 문제해결을 모색하고 실천방안을 만들어내려는 자율규제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기업이 경쟁 기업이나 시민사회, 나아가 정부와 파트너십을 결성하는 것만으로는 갈등을 회피하거나 취약한 협력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의 자율규제는 제도적 규제나 정부 개입 없이는 위태롭거나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율규제 강화를 위해 제도와 시장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기후위기에서 불평등에 이르기까지 시장의 수익과 포용적인 제도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거나 목적 지향적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민주 정부의 책무라면, 기업 또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목적 지향적 기업이라면 성소수자차별법안에 맞선 애플과 월마트의 저항에 합류하거나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한 트럼프 정부를 압박하는 기업연합체에 목소리를 보탤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파타고니아의 투표 캠페인이 보여주듯이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지키고 강화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익추구와 정의실현이라는 공유된 의식의 결합으로 자본주의의 진정한 기반인 공유가치를 재발견하고, 그러한 가치를 목적 지향적 기업의 일상적인 활동 속으로 통합할 때만이 자본주의의 대전환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