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리뷰
기업의 이해충돌과 거버넌스의 제도변화
  • 전경훈(2017), ‘회사에서의 이익충돌’, 「저스티스」, 제159호.
  • 김경식(2019), ‘1998년 이후 상법의 방향성 : 주주자본주의로의 편향과 대안의 부재’, 「민주법학」 제71호.
  • 신연수(2020), ‘최근 미국 델라웨어주 판례법상 MFW 심사기준과 경영판단의 원칙’, 「상사법연구」 제39권 3호.

기업 거버넌스의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은 주주와 경영진, 주주와 채권자, 대주주와 소액주주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발생한다. 또한, 이해관계자 사이에 기업 활동의 이익 배분을 두고서도 다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들 갈등과 다툼은 공식적인 법·제도의 조정과 규제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기업 조직 내부의 이해상충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갈등 상황이 주요 문제로 대두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기업 내외부의 이해충돌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의 정립이 절실해지고 있다.

주주와 경영자의 이해충돌
샘플이미지 한국 기업은 거버넌스 구조 개혁과 경영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것은 1997년 IMF 사태 이후 기업 거버넌스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게 상법이 전면적으로 개정되고 있고, 주주자본주의화가 지속적으로 확산되는 환경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발전국가 시대의 경영 방식을 재조정하거나 위계적 조직문화를 글로벌 트렌드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 세계화의 영향 아래 기업 거버넌스를 개혁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경영진과 지배주주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제도적 실천도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경영진과 주주 사이에서 벌어지는 고전적인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가 실제 상황으로 나타나고,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충돌이 법적 소송이나 여론에 공개적으로 폭로되는 상황에서, 기업 거버넌스의 개혁은 경영의 투명성 감시를 위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주주와 경영자의 이익갈등을 사전에 조정하고, 경영진이나 지배주주의 배임행위를 사후에 처벌하는 규정들은 형식적인 차원을 넘어 기업의 생존이나 발전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되었다.
지배주주와 기업 거버넌스의 변화
샘플이미지 한국의 기업 현실에서 이해충돌의 문제는 대주주와 경영진의 갈등이 아니라 지배주주와 소수주주의 대립으로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법의 공백을 이용한 피라미드출자나 순환출자 등으로 획득한 지배주주의 실제적인 지위는, 제한된 경제적 권리와 상충되는 지배력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다. 아직도 법적 영역과 여론 논쟁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지배주주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어떻게 합병비율이 기계적으로 산정되고 합법적으로 추인되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주주의 경영권 계승을 위해 소액주주의 이해가 훼손되고 이를 제도적인 수단으로 정당화하는 것에서 자본시장에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위험이 계속되고 있다.

지배주주가 비지배주주의 이익을 외면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피해를 가중하는 의사결정이나 업무집행을 하는 것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제도적 규율들은 미국 회사법에서 발전해왔다. 일찍부터 미국의 사법제도는 회사법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을 확립하고, 기업의 인수나 합병 시에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소수주주의 의사를 배제하거나 그 권리를 축출하는 자의적인 거래를 막는 장치를 마련해왔다. 사법적 심판에서 ‘전체적 공정성 기준(entire fairness review)’을 관철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미국 델라웨어 주법원의 2014년 ‘MFW 판결(Kahn vs. M&F Worldwide Corp.)’은 기업 인수 합병 시 ‘공정거래’와 ‘공정가격’이라는 심사기준으로 비지배주주에 대한 보호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특별위원회의 설치와 소수주주의 과반수 승인을 공식화함으로써 제도적 허점을 우회하려는 지배주주의 기도를 이중적으로 사전에 봉쇄하려는 것이었다.1)
  • 미국에서 두 번째로 작고 약 100여만의 주민만이 거주하는 ‘델라웨어주(State of Delaware)’는 기업경영이나 자본투자에 유리한 세제와 기업에 정향된 회사법 덕분에 여러 주요기업을 유치하고 있으며, 기업 활동의 사법적 심판에 있어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델라웨어 회사법’의 사례나 판결은 미국 회사법의 중요한 전거로 활용되고 나아가 글로벌 사법 소송에서도 결정적인 위상을 지닌다.
이해충돌의 제도화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샘플이미지 지배주주의 전횡이나 경영진의 자의적인 의사결정에 맞서 비지배주주에 관한 보호방안을 구현하려는 노력은 사후적인 사법심판 보다는 예방조치를 마련하려는 시도로 발전하고 있다. 불필요한 소송이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정보공개를 통해서 기업 활동의 이해충돌이 불러올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대세가 되었다. 주주가치의 제고만을 목표로 하는 기업 거버넌스의 낙후된 형태나 지배주주의 자의적인 행태를 개선하는 것은 기업의 성장과 시장의 성숙을 결정하는 필연적인 요소이다. 비록 제한된 형태로나마 소수주주의 이해를 보호하고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감시를 강화하려는 ‘공정경제 3법’의 입법화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혁신하려는 제도 개혁의 결과였다.

근로자, 계열사, 거래기업, 소비자, 지역사회에 이르는 이해관계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경영활동 참여에 대한 정당성을 확산하려는 기업의 다양한 시도로 주주자본주의는 전면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18년 미국 상원의원인 워렌이 발의한 ‘책임 있는 자본주의법(Accountable Capitalism Act)’은 대기업이 전반적인 공공(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인가함과 동시에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9년 미국의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역시 기업의 존재이유가 이윤과 주주가치 제고가 아니라 이해당사자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는데 있음을 전향적으로 선포하였다. 2020년 ‘세계경제포럼’이 ‘이해관계자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를 새로운 모델로 채택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모색하려는 것도 단지 추상적인 선언만이 아닌 자본주의의 전환을 실행하려는 현실적인 기획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