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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8년
09월호

사례돋보기

의롭고 외로운 사람들, 내부고발 선배들의 이야기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과 김광호 전 현대자동차 협력업체품질강화팀 부장은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두 사건의 내부고발자들이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1992년 총선 당시 군부대에서 자행되었던 부정 선거를, 김광호 전 현대차 협력업체품질강화팀 부장은 2016년 현대차 부품 결함 은폐를 각각 폭로함으로써 군대와 기업에 만연해 있던 부정과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결코 쉽지 않은, 힘겹고 외롭지만 의로운 길을 선택한 이들. 20여 년의 간격을 두고 진행된 두 사건을 회고하는 일은 국내 내부고발 제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서 촉발된 우리 사회의 변화를 되돌아봄은 물론, 내부고발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 모두가 알고 겪은 공공연한 비밀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 사건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위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점과, 조직원 대부분이 그 문제를 알면서도 자신에게 닥칠 피해 때문에, 그 행위들을 공공연히 묵인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92년 군부대 부정선거

1992년 3‧24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이지문 이사장이 ROTC로 임관해 소대장으로 복무중인 부대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연대장이 대대를 방문해 전 부대원 앞에서 지난 대선 때 대통령이 30% 정도 밖에 지지를 못 받고 당선된 사실이 문제라고 지적한 이후, 대대장이 직접 장교와 직업 하사관에게 이번 총선 때 여당을 찍어야 하며 이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이후 부대 내에는 여당 득표 지지가 장교의 인사에 반영된다거나 사병의 투표용지를 서신 검열기로 확인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 다른 중대들에서는 정신교육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공개투표까지 벌어졌다. 투표 교육을 거부하고 소신을 지키던 중대장은 기무사에서 파견된 연대 보안반장 대위와 면담 후 서신 검열기를 통해 여당 득표가 80% 이상 나오지 않으면 부대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면서 어쩔 수 없이 정신교육을 하기도 했다.

이지문 중위는 이와 같은 일들의 부당함을 동료들에게 호소했지만, 돌아온 답은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반응뿐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과도기였고, 이전의 양심선언 사례들도 대부분 고발자가 심한 불이익을 받았기에 부당하고 억울해도 그냥 넘어가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부정선거 활동이 비단 자신의 부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지문 중위는 한겨레신문에 제보한 후 시민단체인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고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군대 내에서 실시하는 부재자 투표가 영외투표로 개선되어 같은 해 대통령 선거부터 시행되는 등 부정선거 시비를 차단하는 데 일조하였다.

2016년 현대차 부품 결함 은폐

2015년 6월, 현대차가 제조한 자동차의 세타-2 엔진 결함으로 미국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이 있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에서 리콜을 요청하자 현대차에서는 조사보고서에 문제를 축소해 문제 차량의 일부만 리콜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이는 국내에 비하면 훨씬 나은 처사였다. 국내의 경우 부품 결함이 발생하더라도 공개적인 강제 무상수리인 리콜 대신 보증수리 연장이나 비공개 무상수리로 처리하는 게 관례였다.

당시 품질전략팀에서 리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김광호 전 현대자동차 부장은 부품 결함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회사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 담당자는 책임 회피를 위해 공공연히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것에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문제가 100이라면 리콜이 미국은 20~30%, 국내는 10%도 안 되는 것은 물론, 그 마저도 중요 결함이 아니라 미국에서 리콜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거나, 언론에 노출되어 리콜 이외 방법이 없는 경우에만 리콜 실시하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이에 김광호 부장은 32건의 부품 결함 은폐 사건을 공익신고하게 되었고, 그중 8건에 대해 리콜 조치, 2건은 공개 무상수리로 이끌어내었다.

처음에는 회사 내부 감사실에, 다음으로는 자동차안전연구원에 비공개로 제보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내부 제보 후 1년 동안 기다렸지만, 아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김광호 부장은 다음으로 미국 교통부내 도로교통안전국에 직접 제보했고, 국토부에 가기 전 언론에 일련의 사실을 폭로했다. 아울러 법적 보호를 받기 위해 시민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 내부고발, 철저한 준비 없인 불가능하다

이지문 이사장은 1992년 당시를 회고하며 준비 과정의 많은 어려움을 지적했다. “수첩에 대대장이 했던 말들을 일기 식으로 기록해 놓은 것은 있었지만, 구두 전달이 전부라서 문건도 존재하지 않았다. 휴대폰도 없을 때라서 녹취도 하지 못했다. 지금 당시로 돌아간다면 정신교육 때 녹음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초에 제보한 곳은 한겨레신문사였지만,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를 통해 기자회견을 연 것도 양심선언이 전부였기에 조금이라도 공신력을 얻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한겨레는 좌편향된 신문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그의 제보에 대한 신뢰를 의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가 고발 기자회견을 했을 당시 군은 사실을 전면 부인했으며, 해당 부대 전 장교와 사병 역시 조사 과정에서 입을 맞추었다. 다행히 다른 부대에서 200여 명의 제보가 잇따르자 결국 군은 일부 지휘관들의 개인적 성향에 따른 일탈로 사건을 인정했다.

김광호 부장의 경우 매우 철저한 준비가 뒷받침되었다. 조직에 26년간 몸담으면서 자료 수집을 철저히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던 그는, 어느 순간 리콜은폐라는 불법적인 관행을 해결하는 용도로 자료의 가치를 인식한 후 충실히 자료를 모으고 집중적으로 정리도 하기 시작했다. “철저한 자료 확보가 없었으면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감사실에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김광호 부장은 당시를 회고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공익제보를 하기 위해 유출한 자료는 영업기밀 유출 등의 사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면책사유 규정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법의 맹점이 존재한다. 100% 공익제보용이라고 규정하기에 힘든 자료들이 뒤섞이기 때문이다. 전혀 관계없는 자료가 한 개라도 있으면 얼마든지 회사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다. 김광호 부장은 당시 현대차로부터 당시 내부 문서 절취 및 유출, 회사의 명예를 훼손한 점에 대해 사규 위반을 들어 해고되었으며, 영업비밀 침해와 업무상 배임 등 두 가지 이유로 고소를 당하고 압수수색까지 받았다. 결국에는 혐의없음 판결을 받았지만, 개인이 다시 무고죄로 고소하기에는 비용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 결국 포기했다.

“공익 제보를 하기 전 변호사나 관련 시민단체나 사람들하고 미리 만나 충분히 상의하고 준비해야 된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조직의 반격은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과 충분히 상의해서 합법적인 선에서 증거자료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두 내부고발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 공익신고자 제도, 나아온 길과 나아가야 할 길

내부고발은 공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한 고발 이후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손해는 결코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2002년 부패방지법(현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과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시행되는 등, 그들의 공익을 위한 용기와 뒤따른 힘겨웠던 시간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과 제도는 보다 마음이 놓이는 안전지대의 형성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공익신고, 내부고발 대신 양심선언, 폭로 등의 표현이 사용되었고, 당국의 보호조치 대신 기자회견과 증언에 의지해야 했으며, 공익을 위한 행동 대신 기밀 유출이라는 명목 하에 기소 대상으로 몰렸던 것이 이지문 이사장을 포함한 90년대 초반 1세대 내부고발자들의 상황이었다.

작년 초,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익신고 후 한 달 만에 해고되었던 김광호 부장에 대해 공익신고자 보호법을 근거로 보호조치 결정을 내렸다. 명예훼손과 재산상 손실을 이유로 내려진 사내 결정에 대해 내부고발자 보호의 명목으로 국가차원의 보호조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동일한 조건에서 이지문 이사장과 김광호 부장의 상황을 비교하기엔 어려움이 따르지만,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취지가 신고자 보호를 통한 공익침해 방지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 그리고 비밀 유지로 인한 기업의 이익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되지 않는다는 점과 같은 보호조치의 배경은 내부고발자를 위한 안전지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주장에 작지 않은 근거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두 내부고발자는 공익제보의 활성화를 위해 제도가 나아가야 할 길이 분명히 남아 있다고 단언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호보다는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확실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고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법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공익신고자보호는 세계 최고입니다. 공공과 민간 구분 없이 법을 만든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나라 법의 가장 큰 주안점은 비밀 보장과 신분 보장뿐입니다. 보상이 있긴 있지만 한정적이에요. 복직과 같은 신분 보장은 그 때 뿐이고, 정상적인 직장 생활이 어렵다면 공익제보자기금을 만들어 확실한 보상이 뒤따라야 합니다. 고발의 결과가 조직에서의 불이익이나 파면, 가정 파탄뿐이라면 사회 정의와 공익을 위한 제보는 이전처럼 결코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