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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8년
09월호


윤리연구소 - 인사이트+

화이자, 내부고발이 밝힌 전대미문의 스캔들

내부고발은 사회의 부조리를 척결하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위이다. 이를 정착시키기 위해 중요한 것은 내부고발의 긍정적 효과를 제대로 이해하고 내부고발자와 조직을 바라보는 시선을 건강하게 바꾸는 일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의 개선 없이 개인이 처절한 희생을 감수하며 오직 용기와 양심에 의지해 거대한 조직에 맞서는 일은 좀처럼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2009년 세계 최대 규모의 제약 기업 화이자가 미국에서 불법 판촉 행위로 적발된 사건은 시사점이 매우 크다. 이 사건은 벌금 23억 달러(한화 약 2조 8천억 원)를 부과 받아 미국 역사상 범법 행위에 부과된 벌금 중에서 가장 많은 액수로도 화제가 되었지만, 그와 함께 화이자의 불법 판촉 행위가 내부자의 폭로에 의해 밝혀져 큰 주목을 끌었다. 내부고발자 보호를 넘어 기업과 개인에 대한 윤리 의식의 기준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 불법 판촉과 내부고발

당시 사건에서 화이자는 진통제 벡스트라와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 콜레스테롤 강하제 리피토, 우울증 치료제 졸로프트 등 13종의 약품에 대해 ‘불법 판촉’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벡스트라의 경우 원래 관절염 통증을 줄여주는 용도로 쓰이는 약임에도, 화이자는 약을 처방하는 의사들을 설득해 다른 증상인 혈압을 내리는 용도로도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약이 한 가지 효능만 있는 것이 아니며 의사가 승인된 용도 이외의 증상에 처방할 수 있지만, 그런 처방을 하도록 로비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더구나 벡스트라는 약의 다른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승인된 증상 외의 다른 치료를 위해 처방돼 문제가 되었다. 아울러 화이자는 약품 판촉을 위해 세미나 명목으로 의사들을 호화 리조트로 초청해 골프와 마사지, 식사, 숙박, 왕복항공권 등 경비를 제공한 것까지 들어나 더욱 물의를 빚었다.

화이자의 불법 판촉은 화이자 소속의 6명의 내부고발자에 의해 밝혀졌으며, 이들은 합계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보상금으로 받았다. 특히 벡스트라 고발자인 존 코프친스키가 화제가 되었는데, 화이자의 전 판촉 사원이었던 그는 2003년 부작용이 있는 용도로 처방하도록 판촉을 강요하는 회사 측 방침에 반발해 고발했다가 해고를 당하고 이후로도 갖가지 방법으로 화이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6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600억 원이 넘는 보상금을 받은 그에게 언론은 ‘인생역전’, ‘돈방석’이라는 표현을 쏟아냈으나 그 과정은 참담했다. 해고 당시 어린 아들과 쌍둥이를 임신한 아내가 있었던 그는 보험설계사 등을 전전하며 험난한 소송을 이어나가는 등 고통 속에서 6년간 생계를 꾸렸기 때문이다.

◎ 조직 차원의 딜레마

화이자 사건은 미국 역사상 기업 범법 행위에 부과된 벌금 중 최고액이라는 점에서, 이로 인해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었다는 점에서 기업이 입은 타격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때문에 화이자뿐 아니라 내부고발을 겪는 조직이라면 이를 처리하는 의사결정에 있어 많은 고민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식을 전환하면 내부고발은 건강하고 발전적인 기업 문화를 이루는 중요한 축으로 작용하게 된다. 미국에선 내부고발자를 ‘휘슬-블로어(Whistle-blower :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라 부르는데, 이는 내부고발을 단순한 윤리의 문제를 넘어 기업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내부 제보를 불순·과격분자의 소행으로 취급하지 않고 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는 자랑스러운 일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화이자의 경우뿐만 아니라 총수나 CEO 등의 불법행위로 오랜 시간과 엄청난 돈으로 쌓은 기업 이미지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조직이 곪을 대로 곪았다는 것이며, 조직 내에 자정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내부고발의 활성화는 가래로 막을 일을 호미로 막고 나아가 기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 내부고발이 가져온 결과, 내부고발을 불러온 제도

화이자 사건은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한 의료보험 개혁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화이자의 불법 판촉 적발에 대해 의료보험 소비자와 연방정부를 수탈하려드는 개인이나 조직을 응징하는 정부의 노력의 결실로 규정하고 벌금을 워싱턴DC와 전국 49개 주 정부의 연방 의료보험 프로그램 예산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제약업체들이 폭리를 취하기 위해 얼마나 터무니없는 사기행각을 반복해왔는지를 전 세계에 알려 민간의료보험의 폐해를 부각시키는 한편, 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이른바 ‘오바마 케어’, 의료보험 개혁의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이는 모두 화이자에서 자행되었던 부정과 불법에 눈 감지 않은 내부고발자들의 용기가 가져온 결과이다.

아울러 이와 같은 결과는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을 활성화하는 미국의 제도와 인식에서 기인한다. 미국에는 시민들이 세금도둑이나 부정부패를 신고해 포상금을 받는 ‘퀴탐(Qui Tam action)’ 제도가 있다. 퀴탐이란 ‘국왕 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소송을 거는 사람’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내부고발자가 정부 대신 회사를 상대로 소송해 승소하면 비리 기업에 물린 추징금의 15~30%를 돌려준다.

이와 함께 미국은 시민의 공적 참여를 위축시키는 방편으로 기업이 악용하는 이른바 ‘입막음 소송’에 대한 내부고발자 보호를 위해 입막음 소송 방지법(Anti-SLAPP법)을 두고 있다. 해당 소송이 입막음 소송으로 간주되면 조기 각하 또는 기각하는 법인데, 추후에라도 입막음 소송으로 판명되면 문제가 된 기업이나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3년 적십자의 감염혈액 유통, 2009년 계룡대 근무지원단 군납비리 등 사회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사건들을 조기에 적발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모두 내부자의 고발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커다란 해악이 될 사안에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내부고발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경제적 보상을 당연시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참고



공익을 위한 선조들의 내부고발 보호책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진실한 언로를 확보하는 것이 민심을 얻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데 상당히 앞장섰다. 고려 광종은 미약한 왕의 권한을 강화하려고 하급관리나 노비들까지 귀족이나 지방호족을 고발하도록 하며 고발 제도를 정착시켰다. 조선시대 조정은 고발을 수용하는 기관인 고발관아(告發官衙)와 고발을 유도하는 불고지죄(不告知罪), 불법을 행한 자가 자수하면 죄를 감경하는 자수지례(自手之例), 그리고 무엇보다 적극적인 고발자 보호를 통해 공익을 위한 내부자 고발을 권장했다.
◎ 봉사(封事), 왕에게 밀봉해 올리는 의견서

봉사는 왕에게 밀봉해 올리는 의견서로 고려시대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기록은 조선시대에만 남아 있다. 상소를 비밀리에 할 수 있는 제도인 봉사는 왕이 친히 실천할 수 있는 조목을 헤아려 입법절차를 밟는 제도로 국정을 백성의 편에서 올바르게 해나가자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 적극적인 내부고발자 보호

고발자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발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선 시대에는 내부고발자를 보복한 자를 찾아 벌을 주고, 내부고발자에 대해 그가 노비면 양인으로 풀어주고 양인이면 관직을 주며 관리면 승진시킨다는 보호책을 썼다.

내부고발자를 ‘의리를 저버린 배신자’로 낙인찍는 정서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내부고발을 식민지 지배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선조들은 적은 비용으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고발이 필요했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실행했다. 고발자에 대한 직접적 보복만을 막아주는 소극적 보호책에 머물고 있는 지금보다 훨씬 앞선 정책을 통해 적극 보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참고 <고발 역사의 수레바퀴> 곽형석 저, 이담북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