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돋보기
기업의 거짓말, 분식회계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국내에서만 천만 부가 넘게 팔려나간 초 히트작이다. 온라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시리즈는 어느 순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림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림작가는 출판사가 정당한 인세를 주지 않기 위해 판매부수를 축소하는 ‘역분식회계’를 했다고 소송을 했고, 오랜 법정 분쟁 끝에 법원은 해당 출판사에 37억여 원을 그림작가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출판사는 다른 그림작가와 계약하고 출판을 재개했으나, 예전만한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할의 배우가 갑자기 바뀌면 어색하듯, 만화도 그림체가 변하면 재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수익을 정당하게 나누지 않으려 했던 욕심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린 셈이다.

이처럼 분식회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는 기업의 대표적인 비리 행위다. 이번 사례돋보기에서는 분식회계를 저지른 국내외 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회계윤리의 중요성을 상기해보자 한다.

제2의 스타벅스의 몰락 - 중국 루이싱커피
샘플이미지 루이싱커피는 2017년 10월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시작한 커피 브랜드다. 중화사상을 내세운 애국 마케팅으로 인기를 끌면서 3개월 만에 13개 도시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샐러드나 음료 하나만 주문해도 배달을 해주는 데다 수시로 할인쿠폰을 뿌리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2019년 5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며 더욱 기세를 몰았고, 2019년 말 전체 매장수를 4507개로 늘리며 스타벅스(4125개)를 추월해버렸다.
그러나 루이싱커피의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올해 초, 상장사들의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미국의 머디 워터스 리서치가 루이싱커피를 공매도 리스트에 올린 것이다. 공매도란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주가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서 파는 행위를 말한다. 머디 워터스 리서치는 루이싱커피가 분식회계를 했다며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이싱커피는 즉각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했다. 머디 워터스 리서치는 2019년 3분기 기준 점포별 일평균 판매량과 평균판매가격이 각각 69%, 12%씩 허위로 부풀려졌다는 보고서를 제시했다. 이 보고서에는 2만 5천 장이 넘는 영수증, 981일의 영업일이 녹화된 CCTV 영상 등이 증거자료로 포함돼있었다. 즉, 실제로 고객에게 판매된 수량과 재무제표에 기록된 매출액이 크게 달랐던 것이다. 결국 루이싱커피는 분식회계를 한 것이 드러나 상장폐지 수순을 밟았다. 전문가들은 루이싱커피가 고품질 커피, 배달 서비스 등으로 인기를 끌었으나 이것이 곧바로 수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과도하게 외형을 늘리는 과정에서 비용을 감당할 자금줄이 막혔다고 분석했다. 화려한 스토리와 거대한 규모가 기업의 단단한 내실을 담보하지는 못한 것이다.
실적주의와 경직된 조직문화의 비극 - 일본 후지제록스
샘플이미지 후지제록스는 일본 후지필름의 산하 기업으로 복사기 등 문서관리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다. 2015년 도시바가 수천 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로 일본 증시에 충격을 준 것에 이어, 2017년 후지제록스 또한 회계조작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후지제록스 부정회계는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일어났다. 후지제록스 뉴질랜드 판매자회사는 복합기 임대에 회계부정을 해 220억 엔의 손실을 보았다. 호주 판매자회사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여 6년 간 양사 합계 375억 엔(약 3천 850억 원)의 총손실을 봤다. 후지제록스 측은 2015년 여름에 뉴질랜드에서 회계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모기업인 후지필름에는 매출에 문제가 없다며 허위보고를 했다.
후지제록스의 경영진까지 가담해 회계를 조작한 배경에는 일본에 만연한 ‘실적지상주의’가 있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등 실적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본의 기업문화로 인해 특별한 죄의식 없이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관행이 이어져 왔던 것이다. 지나친 실적주의가 전 세계인이 믿고 쓴다는 ‘메이드 인 재팬’ 브랜드에 상처를 낸 것이다. 실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의 신뢰다.
만수르의 축구, 회계부정으로 중징계 - 맨체스터 시티 FC
샘플이미지 맨체스터 시티 FC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프로축구팀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리그의 중위권에 머물렀던 맨시티는, 2008년 아랍의 거부인 만수르가 구단을 인수하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2010~2011년 시즌과 2013~2014시즌 우승을 거머쥐고 승승장구하면서 최근에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 리그의 단골 우승후보에도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꽃길’만 걷던 맨시티는 올해 2월 엄청난 위기를 맞았다.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위반으로 향후 두 시즌(2020~2021시즌·2021~2022시즌) 동안 유럽축구연맹이 주관하는 클럽대항전 출전이 금지되는 징계를 받은 것이다. 재정적 페어플레이(FFP)은 구단이 벌어들인 돈 이상으로 과도한 돈을 선수 영입 등에 지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유럽축구연맹은 구단주인 만수르가 개인 재산을 구단 선수 영입에 원활하게 사용하기 위해 맨시티의 회계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맨시티는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뿐 아니라 3천만 유로(약 385억 원)의 벌금도 부과받았다. 맨시티는 편파적인 결정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항소에 나섰다. 징계대로라면 핵심 선수들이 출전 기회를 찾아 타 팀으로 이적할 것이며, 구단이 붕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맨시티의 승소 여부에 관계없이 이번 유럽축구연맹의 결정은 유럽축구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간 솜방망이 처분으로 넘어갔던 축구계의 각종 부정들을 이제는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41조 회계 조작 사건 - 대우그룹
샘플이미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작년 말 세상을 떠난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자가 남긴 말이다. 실제로 세계경영을 주창했던 그의 대우그룹은 1970~80년대 압축성장을 해 온 한국경제의 명과 암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대기업이었다. 과거 고도 성장기를 구가하던 우리 정부는 수출 주도의 경제정책을 펼쳤고, 대우그룹은 이에 힘입어 공격적인 차입을 통해 인수합병을 거듭하며 외연을 확장해나갔다. 1967년 자본금 500만원과 직원 5명으로 시작한 대우실업은 눈부신 성장을 했다. 1977년 서울역 앞에 세워진 대우센터 빌딩은 지상 23층 규모로 당시 국내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1997년 IMF 사태는 당시 재계 서열 2위였던 대우그룹을 무력하게 쓰러뜨려 버렸다.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하자 해외 채권자들의 상환 압력이 거세졌고, 유동성 위기에 빠진 대우그룹은 엄청난 규모의 분식회계까지 드러나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거래처 사정이 어려워져 받을 수 없게 된 부실채권도 정상 채권처럼 처리해놓았고, 연구개발비는 허위로 부풀렸으며 있지도 않은 설비와 재고자산을 장부에 계상해놓기도 했다. 외국에서 얻은 빚을 투자받은 것처럼 꾸며놓기도 했다. 대우그룹의 성장을 견인한 차입경영의 씁쓸한 민낯이었다.
투명한 회계는 지속가능경영의 토대
분식회계는 오늘도 어디선가 은밀히 행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비리다. 그러나 입출금을 끊임없이 기록해나가야 하는 회계장부 특성상 한 번의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게 마련이다. 중국 루이싱커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의 회계가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외부의 공격에 한없이 취약해진다. 재기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다. 투명한 회계 없이 비즈니스는 지속할 수 없다. 아무리 거대하고 위대한 기업일지라도 예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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