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돋보기
윤리적 인사관리의 필요성과 모범사례
요즘 2030 세대의 핵심가치는 ‘공정’이다. 청년들이 공무원시험에 몰리는 이유에는 비교적 공정하다고 믿는 채용과정도 있다. 그래서 최근 드러난 KT,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의 채용비리 사건에 청년들은 분노보다 허탈함과 박탈감을 호소했다. 이런 사회에서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이처럼 채용비리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사회적 합의를 뿌리부터 뒤흔들어버린다. 보상, 성과평가, 직급체계 등도 마찬가지다. 공정성을 의심받는 인사시스템 밑에서는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한 기업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인사관리에 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경영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번 사례돋보기에서는 인사관리에서 제기되는 윤리경영 이슈와 이에 대한 모범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 신세계 – 고용 불안정성 완화로 향상된 기업경쟁력
샘플이미지 신세계그룹은 국내 최대의 유통 대기업이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을 비롯한 숱한 위기와 불황 속에서도 신세계는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는 인사관리에 있어서 윤리경영 이슈 중 하나인 고용안정성과 업무환경을 중시한 신세계의 윤리경영이 있다.
2003년 자체 윤리경영지수를 개발한 신세계는, 이를 비즈니스 현장 전반에 적용하여 윤리경영 성과를 측정해왔다. 이 지수에 포함된 인재중시 부문에는 채용의 다양성, 인재 육성, 복리후생, 임직원 산업안전 등 윤리적 인사관리 항목도 들어가 있다.
신세계의 실천 항목 중 주목할 만한 지점은 고용안정성이다. 2007년 신세계는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의 비정규직 5천여 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후 비정규직 비중을 대폭 줄이는 등 직원의 고용안정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이와 같은 결단은 이후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났다. 직원들에게 책임감과 소속감이 생기자 2006년 14.2%였던 캐셔 직군 퇴직률은 2011년 8.3%로 급감했다. 업무숙련도도 크게 올랐다. 이마트 점포당 계산 오류 건수는 5년 새 75% 감소했다. 제품 바코드 찍는 속도는 20.5% 빨라졌다. 친절도도 높아졌다. 점포당 캐셔 불만 건수는 2006년 13.3건에서 2011년 4.6건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만족 의견 접수 건수는 0.88건에서 1.47건으로 늘어났다. 고용안정성이 확보될수록 기업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당장의 손익만 생각한다면 윤리경영은 실천할 수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바라볼 때 윤리경영은 분명히 이득으로 돌아온다. 신세계의 윤리경영은 이를 증명하는 모범사례다.
# 유한킴벌리 – 해고가 아닌 교육으로 경영위기 극복
샘플이미지 유한킴벌리는 우리나라에서 첫손에 꼽히는 ‘착한 기업’의 대명사다. 대학생들이 입사하고 싶은 기업 상위권을 차지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유한킴벌리에도 극렬한 노사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970년 출범한 유한킴벌리는 1980년대 중반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국내외 대형 경쟁사들의 등장, 수입품의 범람, 주력제품의 경쟁력 저하 등이 원인이었다. 이럴 때 대부분의 기업은 감원을 한다. 때문에 대규모 실직을 우려한 유한킴벌리 노조는 사장실을 점거했고 갈등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당시 유한킴벌리 경영진이 내놓은 해결책은 해고가 아니라 교육이었다.
먼저 공장 근무형태부터 바뀌었다. 3조 3교대가 4조 2교대가 됐다. 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네 사람이 하게 된 것이다. 모두가 망한다고 했지만 유한킴벌리의 매출은 1996년 3323억 원에서 2003년 7036억 원으로 112% 성장했다. 순이익은 144억 원에서 904억 원으로 무려 528% 증가했다. 비결은 평생학습제도였다. 4조 근무의 한 주기 동안 확보되는 8일 간의 비근무일 중 하루를 공식교육에 할당한 것이다. 이를 통해 생산직 직원들은 연간 200~300시간의 교육을 받았다. 안전, 품질, 공구사용법 같은 직무교육은 물론 리더십 함양, 영어회화, 명화감상 같은 교양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교대가 어려운 사무직도 현업에서 7~10년 근무하고 나면 6개월에서 1년 동안 뉴웨이 디자인팀에 배치되어 경영혁신 프로젝트나 독자적인 혁신과제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후 유한킴벌리의 행보는 국민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캠페인으로 사회공헌과 윤리경영 우수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당장의 감원보다 직원들의 가능성에 주목해 역량 개발에 적극 힘쓴 유한킴벌리의 결단은 윤리적 인사관리의 귀감이 된다.
# 롯데그룹 –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로 조직문화 혁신
샘플이미지 식품, 유통, 관광, 금융 부문 등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롯데그룹은 일상의 직접적인 소비 행태와 밀접한 기업이다. 그래서 일반 대중의 필요와 요구에 민감하다. 이러한 롯데그룹이 최근 전사적으로 추진하며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사업이 있다. 남성의 육아휴직 제도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여성인력이 적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남성들도 눈치 보지 않고 자녀양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조치는 사내 다양성 확보와 애사심 고취, 아빠 육아를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 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 롯데가 국민, 즉 소비자들의 요구에 응답하며 이를 인사관리 제도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2017년 롯데는 대기업 최초로 남성 의무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했다. 배우자의 출산 후 최소 1개월 이상은 반드시 휴직해야 한다. 회사는 휴직 첫 달 통상입금의 100%를 보전하며 최대 2년까지 무급 휴직이 가능하다. 지난해만 1791명의 롯데의 남성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활용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남성 육아휴직자가 1만 7662명이라고 하니, 10명 중 1명이 롯데그룹 직원인 셈이다. 둘째 출산 축하금 200만 원과 함께 유치원 학자금도 월 10만 원씩 2년간 지원한다. 현재 25개 계열사에서 운영 중인 직장 어린이집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롯데그룹은 비즈니스 특성상 여성 근로자가 많다. 롯데가 기업문화 혁신의 근간에 여성과 가정을 두고 있는 이유다. 현재 롯데 신입사원 중 여성의 비율은 40%가 넘는다. 여성과 가정이 안정될 때 롯데그룹 또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저출산 기조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 자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정부의 여러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해법은 결국 일자리를 가진 기업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롯데그룹의 남성 육아휴직 제도는 사회적 인식 전환의 초석이 될 만하다. 육아는 마땅히 부부가 동등하게 누려야 할 경험이기 때문이다.
초연결사회··· 윤리경영은 앞으로 더 필요해질 것
샘플이미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엄청난 사회적 변혁을 가져왔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연결이다.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물. 모든 것은 편집을 거쳐 빠르게 확산된다. 단 한 명의 소비자가 올린 짧은 글이 거액의 비용을 들여 구축한 기업이미지를 한순간에 추락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평가, 보상, 채용 같이 대중이 중요시하는 부문에서 불공정하다고 알려진 기업은 즉시 지탄받는다. 반대로 고용안정성, 다양성 확보, 공정한 채용과정을 추구하는 기업은 크게 환영받는다. 이제 윤리적 인사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것이다.
국내 최초로 윤리경영을 도입한 신세계그룹 구학서 전 회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경영의 모든 결정은 업의 콘셉트를 철저히 지키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하며, 투입되는 비용보다 창출되는 가치가 반드시 커야 한다.” 초연결시대. 윤리경영이야말로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근원적인 솔루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