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돋보기
최고의 비서인가 , 무서운 감시자인가?

4월 15일, 21대 총선이 있었다. 지난 선거들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 바로 빅데이터다. 정당 관계자는 이동통신사가 수집해 제공하는 유권자들의 빅데이터를 선거 유세 전략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지역 주민들의 이동 동선, 소비 유형 등을 성별, 세대별, 시간대별로 분석해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과 장소를 효율적으로 선정한 것이다. 무작정 재래시장에 찾아가는 것보다 훨씬 체계적인 선거운동이 가능했던 셈이다.

산업 현장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올해 1월, 1년 넘게 국회에 계류돼있던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이제 개인정보 일부를 삭제하거나 대체해, 추가정보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가명처리'한 정보는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데이터 경제의 포문이 열렸다는 기대감과 함께 사생활 침해, 개인정보보호 유출 등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이번 호 사례돋보기에서는 주요 산업별로 빅데이터 시대의 명과 암을 살펴보고자 한다.

의료 - 맞춤 의료 시대의 개막, 의료 영리화의 우려도
샘플이미지 빅데이터의 발전으로 의료 분야에도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DTC(Direct-to-Consumer: 소비자 직접의뢰) 시장이다.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검사업체에 넘겨 분석을 의뢰하는 서비스다. 개인의 유전체 정보를 건강관리 및 치료에 반영하는 DTC 유전자검사 시장은 이미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안젤리나 졸리는 DTC 유전자검사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 달한다는 진단을 받자, 암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유방절제술을 단행했다.
지금까지 현대 의학은 질병의 사후치료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빅데이터로 가능해진 맞춤 의료는 질병을 예측하고 대응 방안까지 제시한다. 의료의 패러다임이 달라진 것이다. 이미 고령화가 진행된 선진국에서는 의료비 증가를 방지하려는 목적으로도 유전자검사 및 의료 빅데이터를 주목하고 있다.
장밋빛 전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의료 빅데이터는 개인의 잊힐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어릴 때 앓은 사소한 질병 기록이 빅데이터로 저장되고 유포되면, 성인이 되어 완치된 이후에도 보험 가입이 거절되거나 고용 시장에서 차별당할 수 있다. 의료 영리화의 위험도 있다. 의료 데이터는 그 특성상 홍채 같은 생체 정보, 질병의 유무 등 단편적인 데이터만으로도 그 정보의 주인을 식별할 수 있다. 이러한 민감한 개인정보가 병원, 제약, 보험회사에 무분별하게 공급되면 특정 집단의 보험료가 높아진다거나 소외계층이 의료에서 배제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금융 - 데이터 주권의 확립, 개인 신용정보 유출은 반드시 막아야
샘플이미지 오는 8월, 데이터 3법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이로써 국내에도 개인정보의 상업적 활용 활성화 가능성이 열렸다. 핀테크 업계는 마이데이터 사업 준비로 분주하다. 마이데이터는 개인이 직접 금융기관과 통신사, 병원 등이 보유한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3의 업체에 전달해 새로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시범 사업이다. 기존에 개인정보를 활용할 때는 모든 사항에 본인 동의를 받아야 했지만, 마이데이터 사업을 실시하면 본인이 개인정보 활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마이데이터 사업이 활성화되면 개인은 금융거래 내역을 개인자산관리 업체에 제공해 맞춤형 재테크 서비스를 받거나, 건강·신체 정보를 건강관리 업체에 넘겨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2011년부터 정부 주도로 스마트 공시(Smart disclosure)라는 사업을 하고 이러한 인프라를 구축했다. 애플의 경우 헬스앱을 통해 의료 기관의 개인정보를 다운로드 받아 저장하고 이 정보를 다른 건강앱과 공유해 활용하는 기능을 서비스하고 있다.
마이데이터 사업이 도입되면 대출 금리와 한도를 보여주는데 그쳤던 대출비교서비스도 한층 더 정교해진다. 핀테크 업체는 직접 개인의 예적금, 카드, 보험 등의 정보를 분석해 가장 적절한 대출 상품을 추천해줄 수 있다. 새로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할 경우, 자동차 구매 기록과 자동차보험 가입 정보를 활용해 어떤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서비스 제공도 가능하다.
사회초년생, 주부, 자영업자 같이 금융 이력이 부족해 대출이 어렵거나 과도한 이자를 내야했던 사람들도 혜택을 볼 수 있다. 휴대폰 이용 정보 등 비금융정보를 결합해 보다 정확한 신용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맞춤형 금융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우리나라는 개인의 모든 이력에 주민등록번호가 따라다닌다. 빅데이터를 이루는 가명정보를 결합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개인의 재식별화를 막지 못한다면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가 될 수 있다. 금융의 지나친 상업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플랫폼 - 초개인화시대의 도래, 빅브라더의 위협도 존재
샘플이미지 플랫폼이란 많은 이용자들이 이용하는 웹사이트, 어플리케이션,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의미한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이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이다. 소비자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영화, 소설, 만화, 1인 미디어, SNS를 즐긴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데이터다.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은 전 세계 사용자들로부터 수집하는 빅데이터에 있다. 상품을 사기도 전에 발송하는 아마존의 예측배송이나 내 취향에 꼭 맞는 동영상을 추천해주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대표적인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다.
빅데이터가 대중의 이목을 끈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2016년 미국 대선이다. 대부분의 주요 언론사들은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구글 트렌드는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했다. 근거는 빅데이터에 있었다. 선거 직전 1년 동안 힐러리는 단 한 번도 검색 빈도수에서 트럼프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 여론조사에는 거짓말을 하거나 응답하지 않았던 유권자들이 구글 검색창에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이처럼 정확성이 우수한 빅데이터를 선점하기 위해 수많은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다.
초개인화시대의 서막을 연 플랫폼 기업은 빅브라더로 변모할 위험도 가지고 있다. 지난 4월 3일 구글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 수십 억 이용자의 이동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구글 계정의 이용자 추적 기능을 활용해 식료품점, 약국, 공원, 역, 직장, 거주지 등 여러 지역에서 시간에 따른 지역별 이동 추세를 그래프로 수치화한 것이다. 구글은 이용자의 동의를 얻어 수집한 데이터이며 철저한 익명화를 거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보고서로 구글이 원할 경우 언제든지 전 세계 이용자의 이동 동선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된 셈이다.
빅데이터, 윤리적으로 활용해야
최근 미국의 세 명의 경제학자들은 한 P2P 대출사이트의 데이터를 이용해 변제 가능성을 예측하는 연구를 했다. 대출이 필요한 사람이 대출사이트에 돈이 필요한 이유와 빌린 돈을 잘 갚겠다는 취지의 간단한 글을 적으면, 돈을 빌려주고자 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돈을 빌려줄지 말지를 결정한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약속’과 ‘자비심’을 언급한 집단은 ‘세후’와 ’저금리‘를 언급한 집단보다 돈을 갚을 가능성이 낮았다. 만일 기업이 우리가 돈을 갚을지 안 갚을지 예측하기 위해 우리가 쓰는 단어까지 활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폐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소비자로서 빅데이터를 통해 거대 기업과 싸워 승리를 거두고 있다. 쇼핑 사이트의 무수한 댓글은 불량한 판매자를 몰아내고 선량한 판매자의 성장을 돕는다. 부당하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호텔은 전 세계 숙소비교사이트를 통해 여지없이 퇴출당한다. 이처럼 빅데이터는 소비자와 기업 모두를 도울 수 있다. 앞으로도 빅데이터는 공평해야 한다. 빅데이터 활용에 윤리가 필요한 이유다.
데이터는 21세기 석유라고 불린다. 빅데이터는 분명히 미래로 가는 성장 동력이다. 빅데이터가 차별이나 통제의 수단이 아니라 공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감시와 독려가 모두 필요한 시기다.


자세한 참고자료 리스트는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내 한글파일(PDF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