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돋보기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디딤돌, 공정임금
2019년 대한민국의 화두는 단연 공정성이었다. 교육, 취업, 연예계 등 특혜 이슈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터져 나왔다. 공정성 담론의 최전선에는 임금 문제가 있다. 바로 공정임금이다.
공정임금이 등장한 배경에는 저성장 기조가 있다. 더 이상 파이를 키우는 것이 어려워지자 어떻게 공정하게 분배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게 된 것이다. 고성장 시대에 도입됐던 연공서열, 즉 호봉제를 기본으로 하는 보상제도도 효용성을 잃고 있다. 대신 직무 가치 중심의 보상제도가 설득력을 가지게 됐다. 여기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힘이 실린다. 기업들도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호봉제에 의한 인건비 지출이 부담스러워진 지금, 직무를 중심으로 하는 공정임금이 임금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는 양극화 해소와 차별 방지,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기도 하다.
이번 사례돋보기에서는 공정임금에 대한 정의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 민간 측면의 노력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정임금의 정의
샘플이미지 공정성에 대한 정의는 시대별, 국가별로 다를 것이다. 공정한 임금의 정의 또한 국가, 사회, 개인별로 다를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성별, 국적, 나이, 종교 등의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으면 안 된다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생긴 것으로 보인다. 즉, 공정임금이란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임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정임금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시도들이 있다. 임금공시제도, 최저임금제도, 임금격차 해소운동 등이 대표적이다. 항목 별로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자.

샘플이미지 ◎ 자발적인 최저임금 인상 - 미국 오프라인 1위 유통업체 타깃 최저임금은 임금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을 경우, 아동들까지 노동시장에 투입되고 결국 늘어난 노동공급으로 인해 더욱 임금 수준이 낮아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생겨난 제도다. 공동체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망인 동시에 시장 규제다. 그래서 시장 원리를 중시하는 미국 사회의 최저임금은 경제규모에 비해 낮은 편이다. 실제 미국의 최저시급은 고작 7.25달러 수준으로 2009년 이후 조금도 인상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내 많은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있다. 기업이 공정한 임금을 지불하는지가 미국 시민에게 가장 중요한 기업 평가 요소이기 때문이다. 저스트 캐피털 조사에서 응답자 84%는 기업이 공정임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소비자 정서는 제품 구매와 구직자들의 기업 선호도에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미국 오프라인 유통기업 1위 기업인 타깃은 2017년 내부 최저임금 규정을 시간당 10달러에서 12달러로 높였다. 2020년까지 15달러로 인상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시급 15달러는 노동운동가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사실, 타깃의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월마트의 임금 인상이 있다. 미국 실업률이 감소하면서 인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유통사들끼리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우수한 인력일수록 더 높은 임금을 주는 곳으로 이동한다. 국가가 정한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할 때 기업도 경쟁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샘플이미지 ◎ 임금 정보 공시 - 마이크로소프트 임직원들의 급여 공개 실험 연봉은 친구 사이에서도 선뜻 묻기 어려운 예민한 개인정보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동료의 급여 수준을 묻는 것이 금지돼있다. 급여 차이로 인한 불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를 하는 것은 미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 400여 명은 자발적으로 급여 공개 실험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젊은 마이크로소프트 정규직 직원들’이라는 SNS 그룹을 만들고 공개된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경력, 기본급, 성과급 등 상세한 정보를 익명으로 모아 공유한다. “우리 모두 함께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당신의 익명 정보를 공유하라.” 스프레드시트 맨 위에 적혀있는 문구다. 이 공개된 정보를 분석한 결과, 급여 공개 실험에 참여한 가장 많은 유형은 경력 5년의 MS 근무기간은 5년 정도의 엔지니어였고 기본급 15만 달러, 현금 보너스 2만 달러, 주식 보너스 1만 5천 달러를 받고 있었다. 경력이나 근무 기간보다는 직급이 보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MS를 나와 아마존이나 심지어 스타트업 회사로 이직했다가 다시 MS로 돌아왔을 때 전보다 더 높은 레벨로 도약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는 MS 직원들이 커리어를 설계하는데 매우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된다.
뉴욕의 데이터분석 기업 ‘섬올(SumAll)’은 급여를 완전히 공개하고 있다. 사내 인트라넷에 전 직원의 50여 명의 급여 현황을 게시한다. 섬올 CEO는 이러한 파격적인 정책이 임금 협상 과정에서 직원들이 너무 높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등의 일들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회사의 개방성과 투명성에 만족하는 순기능도 있다고 밝혔다. 소셜미디어 관리 회사 ‘버퍼(Buffer)'의 급여공개 수준은 더 높다. 원격 근무 회사인 버퍼는 외부 사람들도 직원 급여를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급여 공개 다음 달 입사 원서가 두 배 늘었다고 한다.
한편 영국,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등에서는 정부가 임금 차별을 줄이기 위해 제도적으로 임금공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일례로 독일의 ‘공정임금법’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자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임금을 주도록 규제하는 제도다. 사용자는 성별을 이유로 직간접적인 임금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는 임금정보청구권이 있어, 성별이 다른 노동자의 임금이나 그 기준과 관련된 사항을 사업주에게 요청할 수 있고, 사업주는 이를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12월부터 임금정보분포공시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근로자들은 자신의 임금이 업계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적정한 액수를 받고 있는지 보다 쉽게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임금 격차 해소 - CEO의 급여는 일반사원의 5배 이하로 ‘닥터 브로너스’ 자본주의 경제에서 돈은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대표적인 척도다. 임금의 격차는 곧 능력의 격차를 반영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내 CEO 100명 중 11명이 사내에서 중간 수준의 급여를 받는 사원보다 1000배 더 많은 보수를 받아갔다고 밝혔다. 그리고 기업 대부분은 이 같은 보수의 차이를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CEO 100명은 일반 직원보다 평균 254배를 벌어들였다. CEO의 능력이 일반 직원의 능력보다 1000배 이상이 맞는지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해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이다. 극단적 양극화는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신뢰하지 않는 체제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최근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 중에 있다. 그중 하나가 CEO의 급여 수준 통제다. 친환경 스킨케어 회사인 닥터 브로너스는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CEO와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연봉 차이가 5배를 초과하지 않는다. 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상생하기 위함이다. 신용카드 결제시스템 회사인 그래비티페이먼츠의 설립자이자 CEO인 댄 프라이스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20억 원에 달하는 자신의 연봉을 90% 삭감해 전 직원들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가도록 했다. 프라이스는 개인의 행복지수가 연소득 7만 달러 선을 전후해 크게 달라진다는 기사를 접하고 이러한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 격차를 좁히기 위한 제도를 만든 국가들도 있다. 미국의 도드-프랭크법은 소기업이나 신성장회사로 분류되는 등을 제외한 상장회사는 CEO의 임금이 종업원 임금 중간값의 몇 배인지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스위스의 경우, CEO의 급여는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CEO와 일반 근로자간의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다시 주목받는 ‘보이지 않는 손’
샘플이미지 임금 공정성은 애덤 스미스의 공정성 이론에 입각한 개념이다. 한 개인의 관점에서 자신이 조직에 공헌한 요소와 조직에서 받는 임금 간의 비율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평가하는 공정성을 의미한다. 세계경제가 저성장 기조로 들어선 지금,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공정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더더욱 깊어지고 있다.
양극화가 심화되면 1대 99가 아니라 0.1대 99.9의 사회가 될 수도 있다. 극단적 양극화는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진다. 공정임금은 양극화를 완화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발전시키며 사회적으로 합의해 나가야 할 숙제다. 종종 후퇴하기도 했지만 공동체적 결단은 끝내 진일보해왔다. 지금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우리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이끌어나갈지 주목해야 할 시기다.


자세한 참고자료 리스트는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내 한글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