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돋보기
다양성, 생존을 위한 경쟁력

지난 2월, 두 명의 성소수자가 여론의 중심에 섰다.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부사관과 여대를 지망한 트렌스젠더 대학생이다. 서구 사회에서 논의되던 다양성 이슈가 한국에서도 비로소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다양성과 포용성은 기업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전담 직책을 마련하고 다양성과 포용성 확보를 위해 힘쓰고 있다. 이는 선심성 정책이 아니다. 2017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8개국 7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인종, 연령, 성별 등의 다양성 수치가 가장 높은 기업의 혁신성은 다른 기업보다 19% 높았고 매출도 9% 더 컸다. 다양성과 포용성은 재무적으로도 마땅히 지향해야 할 가치인 것이다.

이번 호 사례돋보기에서는 다양성과 포용성 확보를 위해 노력 중인 기업들의 국내외 사례 및 글로벌 동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우버 - 소수자 무시, 회사 존립의 위기로 이어져
샘플이미지 세계 최대 혁신 기업으로 평가 받는 우버는 2017년 회사 문을 닫을 뻔한 위기를 겪었다. 우버에서 일하던 엔지니어가 기업 내 성추행 및 성차별 실상을 폭로한 것이다. 이를 묵살하던 우버는 논란이 커지자 내부 감사를 거쳐 관련자 20여 명을 해고했다. 이 과정에서 창립자이자 CEO였던 트래비스 캘러닉이 직원들에게 성희롱성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투자자들의 거센 사임 요구가 이어졌고 결국 캘러닉은 CEO직에서 사퇴했다.
우버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2018년 한국계 미국인 이보영 씨를 최고 다양성ㆍ포용성 책임자(CDIOㆍChief Diversity&Inclusion Officer)로 임명했다. 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CDIO는 미국 대형 기업이 주로 두는 임원 직책으로, 사내 다양한 소수자 그룹이 차별 받지 않는 기업 문화 형성을 담당하는 책임자다. 높은 매출과 빠른 성장만을 목표로 달려온 우버는, 이 CDIO 임명을 계기로 기존 문화를 반성하고 통째로 조직문화를 혁신하기 시작했다.
볼보 - 남성 위주의 충돌실험, 여성 사망률 높여
샘플이미지 자동차 회사 볼보는 자동차 사고 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다치고 사망률도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볼보 연구진들은 이러한 통계적 사실을 역추적한 결과, 차량 충돌 실험에 남성형 더미(인체 모형)가 이용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남성 더미의 충돌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차량을 제조하다 보니 차량 및 안전시설이 남성 위주로 설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볼보자동차는 1995년부터 충돌 실험에 여성 더미를 이용하는 등 관련 노력을 확대했다. 2000년대에는 임산부와 관련한 충돌 실험 더미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볼보자동차는 1970년대부터 교통사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7만 2천여 명의 탑승자와 4만 3천여 대의 차량 사고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여성, 노인 등 ‘모두에게 안전한 자동차 계획(Equal Vehicle for All Initiative)’을 발표하면서, 기존에 축적해 온 안전 관련 논문 등 다양한 연구 결과 100여 편을 대중에 공개했다. 누구나 볼보의 연구 자료를 통해 교통사고 시 탑승자의 키, 몸무게, 복장 등의 조건은 물론 탑승 위치와 자세 등의 차이에 따라 여성, 어린이, 노인 등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성물산 - 장애인을 위한 패션, 디자인부터 다르게
샘플이미지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장애인 전문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를 론칭했다. 패션 대기업 중에서는 최초의 시도다. 기능성, 디자인, 기성복의 장점까지 담아내기 위해 패션 전문가,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와 협업해 연구했다. 실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수백회의 착용 테스트도 거쳤다. 출시된 코트를 보면, 뒷부분 기장을 짧게 해서 옷이 엉덩이에 눌리지 않도록 했다. 뒤쪽 길이는 엉덩이 선에 맞추고 앞면은 허벅지를 덮도록 디자인했다.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코트 뒷면 등판 상부 전체에 신축성 저지 원단도 사용했다. 구김이 덜 가는 소재의 코트, 쉽게 단추를 채울 수 있는 자석 단추, 한 손으로 쉽게 여닫을 수 있는 지퍼고리, 입고 벗을 때 쉬운 긴 지퍼, 옆지퍼가 적용된 바지 등 모두 장애인들의 생활을 고려해 기능성을 살린 상품이다. 해당 브랜드 측은 매장에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해 온라인몰을 통한 판매도 진행하고 있다. 무료 반품 및 교환, 상세 사이즈 가이드 및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일대일 해피콜을 지원해 구매 편의성을 높였다.
한국맥도날드 - 장애인 특수성 고려한 직무 개발, 90세 노인도 고용해
맥도날드는 장애인과 노인 고용에 앞장서고 있다. 맥도날드의 장애인 고용률은 3.49%로 의무 고용률인 3.1%를 상회한다. 특히 타 기업에서는 채용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들을 주로 채용한다. 이들에게 적합한 업무를 배정하기 위해 레스토랑 내부의 청결을 유지하고 시설 관리 및 유지를 담당하는 ‘메인터넌스(Maintenance)’ 직무를 개발하기도 했다.
맥도날드는 차별 없는 열린 채용을 통해 노인들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작년에 은퇴한 임갑지 크루는 2003년에 입사해 맥도날드 미아점에서 17년간 근무하고 92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맥도날드는 본사에서 임 크루의 은퇴식을 열고 근무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지각과 결근이 없었던 그의 공로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골드만삭스, 앨리엇매니지먼트 - 다양성 높은 기업이 투자 수익도 높아
샘플이미지 최근 글로벌 투자자들은 각 기업에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최근 25억 달러(약 3조 원)를 투자해 소프트뱅크 시가총액의 3%에 달하는 지분을 확보했다. 엘리엇은 소프트뱅크의 이사회 전원이 남성인 것과 사외이사가 2명뿐인 것을 지적하며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강화를 요구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손정의 회장은 앨리엇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해 말부터 새로운 이사진을 물색 중이다. 골드만삭스 또한 비슷한 논리로 투자방식을 바꿀 것을 예고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7월부터는 미국과 유럽에서 여성이나 비(非)백인 이사회 멤버가 없는, 다양성이 결여된 기업들의 기업공개(IPO)를 돕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초점은 여성 멤버의 유무로, 내년엔 요구 인원을 두 명으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년간 IPO를 한 기업 중 여성 이사가 포함된 기업이 수익을 더 잘 냈다는 게 골드만삭스의 논리다. 솔로몬 CEO는 “사업 기회를 조금 놓칠 순 있겠지만 장기적으론 해당 기업 주주들에게 프리미엄의 수익률을 제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엘리엇과 골드만삭스가 글로벌 기업들에 잇따라 이사회 구성 변화에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점은 자본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 입장에서 대규모 투자 자금을 운용하는 ‘큰손’들의 요구 사항을 간과하기 어렵고, 결국 국제적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양성, 생존을 위한 경쟁력
생물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강하고 유전조건이 우수한 생물이라 해도 종 다양성이 없을 경우 새로운 질병에 적응할 수가 없으므로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기업 또한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조직의 다양성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창의성이 없는 조직은 환경변화에 적응력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 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다.
한국사회와 한국기업의 다양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고 또 혁신하기 위해서는 다양성 확보와 포용성 고취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자세한 참고자료 리스트는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내 한글파일(PDF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