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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7년
3월호

사례돋보기

부를 물려주다

SNS에서 시작된 ‘흙수저’, ‘금수저’는 이제 뉴스에서도 언급할 정도로 흔한 말이 되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부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는 수저계급론이 일상화 된 것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부의 세습’이 큰 관심사임을 보여준다. 물론 이것은 부정적인 관심인 경우가 많다. 특히 기업경영권의 계승, 고용 세습 등은 그 과정에서 편법과 위법행위가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다. 결국 이는 기업 내외부의 문제로 이어지고 기업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세습의 현주소

2016년 3월, 미국의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각국의 부자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를 조사해 발표했다. 그 결과 한국은 2014년을 기준으로 74.1%가 세습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부의 세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물질 만능주의 세상에서 돈을 움켜 쥔 아이

어린 주식 부자

2015년 10월, 재벌닷컴에서는 1억 원 이상의 주식자산을 보유한 19세 이하의 미성년자들을 공개했다. 미성년 주식 부자는 모두 262명이었으며, 이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1조 58억 원에 달하였다. 이는 상장사 오너 일가에서 자식이나 손자, 손녀에게 주식을 증여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과 동시에 기존의 미성년 주식 부자들이 가지고 있던 주가가 상승한 결과였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한 사람은 H 제약사 회장의 12살짜리 손자였고, 2~7위까지도 H 제약사 회장의 손자, 손녀들로 확인되었다.

대기업 노조의 고용세습

2016년 7월, 대기업 H사의 노조는 사흘간 파업에 들어갔다.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것이 ‘파업’이지만, 이들의 파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들의 연봉은 대기업 정규직 평균 연봉(6544만 원)보다도 훨씬 많았던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평균 연봉이 중소기업 정규직 연봉(3363만 원)의 두 배에 달한다는 점을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들에 대한 불만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회사와의 단체 협약에 자녀 고용 승계에 대한 사항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조합원이 업무상 사망했거나 6급 이상 장애로 퇴직할 경우, 그 가족 중 한 사람을 특별 채용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고용승계에 대한 협약을 가진 것은 H사 뿐만이 아니다. 2016년 6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단체협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위 30대 기업 중 조합원 자녀 우선 채용 규정이 있는 곳은 11곳에 달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들에게 시정 명령을 내렸지만, 특별 채용에 대한 협약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2017년 2월, 고용노동부의 또 다른 조사결과 장기근속자, 정년퇴직자의 자녀 또는 피부양가족, 업무상 재해 또는 기타질환·사고로 장애를 입은 조합원의 자녀 등에 대한 ’우선·특별채용‘ 조항이 2016년 말 조사결과(742개 단협 위반)와 비교해 50%도 개선(366개 단협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계속 시정명령을 내리고 벌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습의 문제점

경영권·고용 등의 세습에 문제가 제기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재벌 2세, 3세의 인성문제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부를 세습한 이들이 올바른 경영을 보고 배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자신을 왕처럼 생각하는 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갑질이란 사회적 이슈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된 일탈 행위는 회사에서 뒷수습에 나서며 회사의 인적·물적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재벌 2세, 3세들의 갑질 논란

재벌 2세, 3세들의 큰 이슈는 폭행에 대한 논란이다. 2010년 S사의 재벌 2세는 1인 시위를 한 기사를 폭행하고 맷값 2000만 원을 지불하는 사건을 벌여 영화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2016년 말, D사의 재벌 2세는 술집에서 생일파티를 하던 중 종업원과 시비가 붙어 기물을 파손한 것이 알려졌다. D사는 이에 대해 술집에서 케이크 값을 바가지 씌우려 하여 일어난 사건이라며 사건을 무마하려 하여 더욱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H사 재벌 3세 역시 만취 상태에서 술집 종업원을 폭행하고 연행과정에서 경찰에게까지 난동을 부렸다. 자사 직원들에 대한 갑질도 끊이지 않는다. 2014년 있었던 땅콩회항 사건은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르게 견과류를 서비스 했다는 이유로 재벌 3세가 기체를 공항으로 되돌려 자사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한 사건이다. 또 다른 D사의 재벌 3세는 운전기사와 눈을 마주치기 싫단 이유로 룸미러와 사이드 미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운전을 시켰고, H사 재벌 3세는 운전기사에게 신호나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도록 시키고 140장에 걸친 갑질메뉴얼을 만들어 외우도록 시킨 것이 알려졌다.

정당한 세습을 위한 노력

부나 경영권이 세습된다고 해서 무조건 지탄 받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이 투명하고 정당하며, 세습을 받는 이가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갖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비난 여론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한 세습이란 무엇일까?

그룹의 상속세

2016년 9월, O그룹의 명예회장이 별세하였다. 자연스럽게 O그룹은 그의 아들에게 상속되었다. 그렇게 아들이 상속받은 주식은 약 3000억 원. 현행 상속세법상 30억 원 이상의 상속이 이루어질 경우 상속세는 50%이다. 결국 그가 내야 할 상속세는 1500억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O그룹의 새로운 회장은 5년에 걸쳐 이 세금을 모두 납부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네티즌 사이에서는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이라며 긍정적 여론이 조성되었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2000년, 세계의 대부호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멀린다 게이츠가 세운 재단이다. 전 세계의 빈곤과 질병 퇴치, 교육 등을 위해 일하는 이 재단은 400억 달러(46조 7000억 원)수준으로, 빌과 멀린다가 살아있는 동안 이 돈을 다 소진하는 것이 목표이다. 2006년, 빌과 멀린다의 친구인 워런 버핏도 자신의 자산을 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며 재단 운영에 관여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빌과 멀린다가 살아있는 동안이라는 전제가 붙어있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특이하게도 소액의 기부를 받지 않는다. 소액의 기부금은 빈곤 퇴치 등에 쓰이기보다 소액기부 처리를 위한 직원고용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전세계 대부호에게 ‘The Giving Pledge’운동을 통해 기부를 유도하고 있다.

독일에는 기업을 상속하여도 그에 대한 상속세를 면세해주는 제도가 있다. 이는 특정한 경우에만 해당되는데, 상속 후에도 5년 간 회사 운영을 지속하며 일자리와 임금을 유지하면 85%의 세금을, 7년 이상을 유지하면 전액을 면세 받을 수 있다. 상속을 받은 후계자가 회사 운영에 필요한 능력과 오너십을 가지고 고용창출이라는 기업의 책임을 다 해야만 그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이 부를 소유하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부를 얻는 과정에서 부당한 행위나 편법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또한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경영권이나 일자리가 세습되어 자격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권리가 박탈당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부의 세습에 있어 가장 중요한 단어는 ‘책임’일 것이다. 자신이 부모를 통해 얻게 된 부와 회사와 일자리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고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를 인지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한다면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