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사건 경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혀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부자가 진술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내부고발자들이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많은 고민과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동료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만 하는 데다가 옳은 길을 가기 위한 선택으로 인해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과 사회는 이들을 보호하고 독려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
조직에 몸담고 있다 보면 그 안의 부정과 부조리를 직면하게 되는 때가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여러 이유로 이에 대해 직접 지적하고 나서는 것은 꺼린다. 반면,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은 대부분 한 가지 이유로 목소리를 높인다. 바로 옳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독일 카셀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근무하던 슈펭글러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폭스바겐 내에서 공금 유용과 비용 부풀리기를 이용한 착복 등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슈펭글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는 일부 몇몇 직원의 일탈이 아니라 노조까지 연루된 부패 사건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직속 상사와 감사담당관, 경영진에게 알렸으나, 몇 해가 지나도록 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2003년, 회사에 알리는 것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슈펭글러는 주주들과 감독이사회에 편지를 보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며칠 뒤 그가 받은 답변은 슈펭글러 자신의 해고통지였다. 부정행위로 회사의 공금이 새고 있음을 고발한 대가는 가혹했다. 슈펭글러는 긴 시간 동안 법정 투쟁 속에 힘든 싸움을 이어가야 했으며, 수년 후에야 검찰 수사를 통해 슈펭글러가 고발한 사내 부패문제가 밝혀졌다.
슈펭글러의 고발 이후에도 폭스바겐 내에서는 다른 부정행위가 발각되었지만 최고경영진은 사건과 연루된 의혹이 있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처벌을 하지 않는 등 부정행위를 쉬쉬하는 관행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문화는 2015년 배기가스 조작 사건을 통해 전 세계에 낱낱이 드러났다.
2009년, K 해군 소령은 계룡대 근무지원단 내에서 납품비리가 일어나고 있음을 눈치챘다. 금품을 받고 고가의 물품을 수의 계약이 가능한 소액으로 분할하여 특정 업체와 계약했으며, 물품대금을 입금한 후 일부를 현금과 상품권으로 돌려받는 식으로 빼돌린 돈이 9억 원에 달했다. K 소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절차에 따라 여섯 차례나 고발했지만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K 소령은 근무평가에서 최하 등급을 받았다.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같은 육군 헌병도, 해군 헌병도, 국방부 감찰단도 아닌 시사고발프로그램 ‘PD수첩’ 뿐이었다. K 소령의 고발이 보도되고 논란이 되고나서야 국방부는 재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31명의 비위행위가 적발되었고 국방부는 재발방지를 위해 재산등록 대상자를 확대하는 등 규정을 강화했다.
납품비리에 대해 폭로한 K 소령은 2011년 ‘부패방지 부분 훈장’을 수여받는 등 주변의 응원과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군 내에서는 교관 자격을 박탈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다가 전역해야 했다. 전역 이후 그는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관 공채에 당당히 합격하여 조사관으로 활동하였고, 2016년 국방권익연구소를 개설하여 방산비리 고발 및 공익제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3년, 한국적십자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수혈로 인해 60대 남자 두 명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보도된 것이다. 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이 유통된 것은 적십자의 혈액유통에 대한 관리소홀 때문이란 내부제보가 함께였기 때문에 적십자사는 수많은 질타에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에 대해 내부제보를 한 K 씨, I 씨, L 씨, C 씨는 전산관리시스템을 통해 에이즈, 간염, 말라리아 바이러스가 감염된 혈액이 유통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사례를 모아 언론에 알렸다. 언론보도 후 적십자는 이들을 찾기 위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예방법’ 위반을 이유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지속적인 조사로 4인의 내부고발자는 차례차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적십자는 신원이 확인된 내부고발자들에게 징계를 내렸으나 부패방지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 및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이 이어지자 이를 곧 철회했다.
한편, 적십자는 감사를 진행하여 질병에 감염된 혈액의 유통에 관련된 책임자 10여 명에게 감봉 및 해임 등의 중징계를 내렸다. 뿐만 아니라 혈액 관리시스템을 대폭 개선하여 재발방지를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미 내부고발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4인의 내부고발자는 아직까지도 적십자에서 일하며 안전한 적십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직 내의 부정행위를 목격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내부고발을 망설이는 이유는 불이익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업은 물론 국가까지도 이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그리고 내부고발로 인해 이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S사는 다양한 게임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중견기업이다. 이들은 윤리 규정을 마련하고 실천하면서 상담 및 신고를 통해 위반 내용을 제보받고 있다.
상담 및 신고에 대한 내용으로는 ‘이해관계자로부터 금품 및 향응 수수’와 같은 기본적 내용과 함께 ‘회사의 지적 재산 및 기밀 정보 유출’ ‘문서나 데이터의 조작’ 등 게임사에서 문제 될 수 있는 사항이 명시되어 있다.
S사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메일을 통해 상담 및 신고를 받고 있는데,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싶지 않은 경우 익명신고가 가능하다. 이 익명신고의 특징은 제3자 위탁 서비스를 통해 신고자의 정보가 아예 S사에 보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S사의 홈페이지에서 익명신고를 누르면 S사와 계약한 외부의 익명신고업체의 신고페이지로 연결된다. 뿐만 아니라 내부신고를 하고 신고내용 처리 과정에서 의사소통이 필요한 경우에도 익명신고업체를 통함으로써 신고자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2011년 3월,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공익침해행위(국민 건강과 안전·환경·소비자 이익·공정한 경쟁 및 이에 준하는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신고한 사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이 법률에 따라 공익신고자(특히, 내부 공익신고자)는 ‘비밀의 보장’ ‘신변보호조치’ ‘인사조치’ ‘보호조치’ ‘불이익조치 금지’ ‘보상금 및 포상금, 구조금 등의 지급’을 요청할 수 있다. 즉, 신고자의 신분은 비밀에 부쳐지며, 공익신고로 인해 신변을 위협받는 경우에는 신변보호 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직장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요청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이익이 발생한 경우 보호 조치와 구조금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공익신고를 통해 공공기관 등에 직접적인 수입의 회복 또는 증대를 야기한 경우엔 보상금을, 재산상 이익이나 손실을 방지한 경우엔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내부고발의 가장 큰 수혜자는 기업이다. 기업은 내부고발자의 목소리를 통해 회사 내의 문제점을 빠르게 확인하고 이를 시정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내부고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나 이를 배척하는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 기업이 내부고발을 진심으로 독려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손해에 연연하며 질책하는 문화를 타파해야 한다. 부정행위가 장기적으로 기업에 미칠 위험성을 고려하는 기업문화가 확산되어야만 조직원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으며 내부고발을 더 적극적인 자세로 수용할 수 있다. 자사의 문제를 그 어떤 이해관계자보다 빠르게 확인하고 먼저 나서서 바로잡는 책임감 있는 기업,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의 출발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위상을 높이는 것임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