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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
브리프스

2017년
12월호

윤리연구소 - 시사톡톡

‘파라다이스 페이퍼스’가 남긴 교훈

11월 5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이 입수한 조세도피처 관련 문서 1340만 건의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영국령 버뮤다에 본사를 둔 로펌 ‘애플비’에서 1950~2016년 생산한 대출계약서와 재무제표 등 내부 문서 700만 건이 포함돼 있다. 협회는 한국의 ‘뉴스타파’를 비롯해 미국 뉴욕타임스 등 67개국 96개 언론사 382명이 참여한 공동프로젝트, 일명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미국 상무장관 윌버 로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비롯한 각국 정상 120여 명과 유명 연예인 그리고 애플, 나이키, 우버 등 대형 다국적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의 주연 애플비의 전문 분야는 국제 법률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어 슈퍼리치와 다국적 기업의 돈을 숨겨주고, 세금을 없애주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조세도피를 위한 피난처가 반드시 필요했다.

조세피난처(tax haven)를 찾아서

조세피난처란 법인세 및 개인소득세에 대한 원천과세가 전혀 없거나 매우 낮은 세금이 적용되는 등 세제상의 특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외환거래 등 금융거래 전반에 걸쳐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되며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조세정보의 교류에 굉장히 소극적인 국가 내지 지역을 말한다. 조세피난처는 외국환관리법·회사법 등의 규제가 적고, 기업 경영상의 장애요인이 거의 없어야 한다. 현재 상당수 다국적기업들은 이들 조세피난처에 자회사를 설립해서 세금을 회피하고 자금을 결집·조작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세피난처는 일반적으로 △ 텍스 파라다이스(tax paradise): 완전 조세회피·무세지역인 바하마, 버뮤다, 케이맨제도 등 △ 텍스 셸터(tax shelter): 국외소득 면세국인 홍콩, 라이베리아, 파나마 등 △ 텍스 리조트(tax resort): 특정 법인 또는 사업소득 면세국인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스위스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된 조세피난처에서 탈세와 돈세탁용 자금거래가 은밀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조세피난처를 활용할 경우 절세나 탈세가 가능하지만 정부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세수감소가 발생한다.

영국 시민단체 조세정의네트워크(taxjustice.net)는 1970∽2010년 세계 각국에서 해외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자산이 21∽32조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1970년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유출된 자금 총액은 해당 국가의 부채를 갚고도 남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가브리엘 주크만 교수는 『국가의 잃어버린 부』라는 책에서 2013년 기준 조세도피처에 숨어 있는 자산이 세계 개인 금융자산의 약 8%인 7.6조 달러에 이르며 이로 인한 세금 손실이 약 2000억 달러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이윤 중 조세도피처로 빠져나간 비중이 1980년대 중반 2%에서 30년 동안 약 20%로 급등했고, 이윤에서 세금으로 내는 비중은 30%에서 15%로 급락했다. 저자는 이를 ‘조세도피처의 재앙’이라 표현한다.

룩스리크스(Luxleaks) 스캔들을 아시나요

고 있던 2만8천 장의 내부문건을 토대로 340개 다국적기업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발생한 수익을 세율이 낮은 룩셈부르크로 옮겨 수십억 달러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비밀을 폭로하였다. 이른바 룩스리크스 스캔들이 발생한 것이다. 이 스캔들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2014년 ICIJ가 룩셈부르크 조세당국과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과세규정 등 내부문서를 조사한 결과 룩셈부르크 정부가 애플, 이케아, 펩시, 도이체방크 등 340개 다국적기업의 세금을 줄여줄 목적으로 비밀협약을 맺었고 PwC가 자문한 것을 밝혀냈다.

이 스캔들은 PwC에 근무했던 앙투안 델투르와 라파엘 알레가 외부로 문서를 유출하면서 시작되었다. ICIJ 폭로 후, 델투르와 알레는 룩셈부르크 검찰에 의해 문서 절도와 돈세탁, 영업비밀 유출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최초 폭로 기자 페랭도 내부 절도와 영업 비밀 침해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2016년 5월 룩셈부르크의 형사법원은 델투르와 알레를 세금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기여했고 공익을 위해 행동한 내부고발자라고 인정했지만, 기업의 영업 비밀 침해 행위를 양형 이유로 그들에게 각각 벌금 1,500유로와 1,100유로를 선고하였다. 한편, 재판부는 페렝에게 문서 유출의 원인 제공자가 아니고 기자로서의 직분을 했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법률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이 판결이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을 위축시키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였다.

‘파나마 페이퍼스’ 칼바람의 의미

지난해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에서 사상 최대 조세도피처 관련 자료 ‘파나마 페이퍼스’가 유출됐다. 모색 폰세카는 세계 주요 도시와 조세도피처 40여 곳에 해외사무소를 운영하는 대형로펌으로 역외 탈세와 돈세탁, 검은돈 은닉 등을 주요 서비스로 제공하는 이른바 ‘역외 비밀 도매상’으로 악명 높다. ICIJ는 이 자료를 분석하여 아이슬란드 총리와 파키스탄 총리,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등 각국 정상 12명과 그 친인척 61명, 고위 정치인과 관료 128명, 포브스 갑부 순위에 등장하는 슈퍼리치 29명이 역외탈세, 돈세탁, 검은돈 은닉 등에 연루된 사실을 폭로했다.

이 폭로의 첫 희생자는 당시 아이슬란드 총리 귄로이그손이었다. 그는 2009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부인과 공동소유 회사를 가지고 있다가 자신의 지분 50%를 부인에게 1달러에 넘긴 사실이 폭로되어 이틀 만에 사퇴했다. 또한, 당시 영국 총리 캐머런도 파나마 페이퍼스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어 위기를 맞았다. 그 밖에 파키스탄, 스페인, 몰타,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등 각국 정관계 인사들이 폭로의 칼바람을 맞았다. 하지만 이 칼바람의 의미는 지난 40년간 세계적인 유력자들이 어떻게 세금을 회피하고 재산을 은닉했으며, 심지어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거래까지 서슴지 않았는지를 잘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구글과 애플의 조세 도피 행보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은 아일랜드와 같이 세금이 낮은 국가에 회사를 세워 특허권을 몰아준 뒤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윤을 그곳에 보낸다. 애플도 해외에서 발생한 수익(애플 전체 매출의 약 55%)을 아일랜드 법인에 모아두는 수법으로 세금 납부를 피해왔다. 해외수익을 미국 본사로 이전할 경우 35%의 세율을 적용받지만, 아일랜드에서는 2~5% 안팎의 세금만 납부하면 된다. 2014년 말 애플은 아일랜드가 국제 사회의 압력에 세율을 올릴 조짐을 보이자, 애플세일즈인터내셜과 애플오퍼레이션인터내셔널 등 두 곳을 영국령 저지섬으로 이전했다. 저지섬은 외국기업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조세도피처다. 따라서 심각한 역외탈세를 막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선진국 정부들은 소위 구글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고, OECD 차원에서 금융정보공유 노력이 활발하다. 구글세란 구글 등 다국적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을 대상으로 부과되는 각종 세금으로서 콘텐츠 저작권료나 사용료를 부과하는 저작권 관점의 세금과 소득을 세율이 낮은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회피한 법인세에 세금을 부과하는 조세회피 관점의 세금을 통칭한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가 남긴 교훈

영국 여왕이 케이맨제도와 버뮤다에 투자한 1000만 파운드 중 일부가 12년간 영국 유통업체 브라이트하우스에 흘러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 기업은 노동착취 혐의로 기소된 전력이 있는 ‘악덕 업체’로 꼽혀 영국 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한편, 한국인 232명과 이들이 세운 페이퍼컴퍼니 90곳의 거래 내역도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들어 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재정지출을 위한 세수증대가 필요하고 부의 불평등 심화로 인해 세계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기업이 절세를 핑계로 단순히 국제 법망을 피해 다니는 행태에 시민의 불만이 높아 언제 어디서 ‘외부고발자’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더욱이 ‘파라다이스 페이퍼스’가 조세회피를 막기 위한 활발한 국제공조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욱 크다.


참고